담배가 먹고 싶다. 견디지 못하도록 먹고 싶다. 문으로 내다보이는 저편 앞에 담뱃내 나는 것을 보면,그것이라도 먹고 싶 다. 담배 부스러기도 없다. 더군다나 성냥은 더 없다.누구든 담배 한꼬치 주 는 사람은 없느냐?아, 마침내, 담배는 먹지 못하고 죽어버릴까?
조각글ㆍ6
수술하였다. 배를 짼 뒤에, 무엇이라든가를 꺼내고 무슨 쇠를 안으로 대고 얽어맸다 한다.수술하기는 오전 10시쯤이다. 나는, 수술대로 가서 수술상 위에,백정에게 끌려가는 양의 마음으로 올라 누웠다. 원장은 내 목숨을 보증하지 못하겠다 하되,나의 벗 대진 R이 아무 래도 죽을지면 최후 수단을 써보자고 복부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R은 수술의를 갈아입은 뒤에, 매스, 집게, 이상하게 생긴 갈고리들을 소독 한다. 마음은,아무래도 내 몸속에 들어가 있지 않는다. 어떤 때는 소독하고 있 는 R도 보고,또 어떤 때에는 내 몸에서 이삼 척 떠서 나를 내려다보고 한 다.한참 나를 내려다보던 나의 마음은 또 R에게 향하였다.R은 내게 등을 향하고 간호부와 함께 그냥 기구를 만지고 있다. ‘무엇을 저리 오래 하노……. 아니, 더 오래 해라, 할 수만 있으면 내년 까지라도 하여라.’ 내 마음은,참다 못하여 떠가서 R의 맞은편에 섰다. R은 메스를 소독하고 있다.잘 들게 생겼다 저것이 내 배를 쑥쑥 쨀 것인가 생각하매 무서워진 다. 참 잘 들게 생겼다.그놈으로 견주면,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이 겨냥만 하여도 썩썩 잘라질 것 같다.마음이 내려 앉지를 않는다. ‘몇 시간 걸리는가.’ R은 맞은편에 있던 나의 마음은,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다. 그러나 내 몸속에는 역시 안 들어가고 이상하게 떨고 있다.나는 일어날까 생각하였다. 몸이 수술대에 붙어 있지 않는다.한 30분이나 걸린 뒤에 조수 몇 사람이 들어오며, R과 간호부는 내게로 온 다.마음은 화다닥 내 몸속에 뛰어들어와서 숨었다. 나는 힘껏 눈을 감았다.달각달각하는 소리가 들다가 무엇이 입과 코를 딱 막는다. ‘괴롭다’ 생각할 동안,에테르의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음은 차차 평화스레 몸에서 떠올라간다.머릿속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면 서 차차, 차차 재미스러워온다. 그 뒤는 모르겠다.잠들 때에 눈에 걸핏 보 인 것은, 그것은, 의사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요 또는 삶도 아니요,무덕무 덕 사람의 코 같은 데서 나오는 담뱃내다.
나는 어두운 길을 자꾸 걸었다. ‘나는 시방 어디로 가는고?’ 나는 생각하였다. ‘응, 악마한테 간댔것다. 똑똑히 생각나는,악마한테 가는 길을 나는 더듬어서 어둡고도 밝은 길을 걸었다. 나는,어느덧 그의 광대한 집에 이르러 훌륭한 그의 응접실에 그와 마주 앉았다.그는 오늘 사람의 모양(젊은이의)을 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허리 띠에는 큰 불 붙는 돌을 차고 있다. “왔나?” “왔네.” “무얼 하러 왔나?” “좀 부탁할 게 있어서 왔네.” “무얼.” “그런데…… 자네, 전에 잘 타협해보자구 안 그랬나?거기…….” “하하하하, 사람이란 뜻밖에 정직한 물건이야!거짓말이야, 그건 다 …….” 성도 안 난다. 나는 다시 물었다. “거짓말이야?” “그럼, 거짓말하면 나쁘나?” “나쁘잖구!” “그건 인간 사회에서 하는 말이라네!” 물어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다. “우리 사회에선?속이는 자는 영리하구, 속는 자는 미욱하다지.” “악마 사회는 다르다.” 나는 웃었다. “그럼 난 가겠네.” “왜?자넨 나한테 물어볼 일이 있지 않나?” 그 말을 들으니 물어볼 말이 있었던 듯하다. “응, 있네. 가만, 무에던가…….” “생각해보게.” 한참 생각하였다. 그리고 물었다. “난 죽은 뒤엔 무얼 되겠나?” “되긴 무에 되어!다만 내세에 갈 뿐이지.” “내세?천국, 지옥?” “하하하하 아무렇게 해석해두 좋으네, 그거 전세와 같은 내세가 있는 줄 만 알면…….” “전세?” 그럴듯하다. “그럼, 전세. 태월중(胎月中) 생활 몇 달, 또 그 전세 정액 생활 며칠, 또 그 전세두 있구…….” 그럴듯하다. “정액 생활에서 태내 생활루 들 때에,정액이란 것은 죽어버리고 정충만 태와 태아로 변하지 않았나?또 그것이 인간 생활로 변할 때엔, 태는 죽어 버리구 태아만 사람으루 되지 않았나?속에 영(靈)이란 것을 간직해가지 구……. 그게 또 이제, 몸집을 벗어버리구 영만 내세루 갈 것은 정한 일이 지……. 그 뒤엔, 또 내내세로 가구. 하하하하.” “정말인가, 거짓말인가?자네 말은 믿을 수가 없네.” “아무렇게 생각해두 좋으네!” “그럼, 자넨 무언가?천국두 없구 지옥두 없으면 자네가 있을 필요는 무 엔가?” “나?우리 악마라는 것을 그렇게 해석하면 우린 울겠네. 우리는 즉 사람 의 정이구 사람의 본능이지.” 그럴듯하다. 즉, 무엇이 기쁜지 차차, 차차 기뻐온다. 나는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하 였다.발이 땅에 붙지 않는다. 한참 재미있게 출 때에, 누가 내 발을 잡아 당긴다. “누구냐!” “자네 아닌가?” 악마가 대답하였다. “술이나 먹고, 춤추게.” 나는 그에게 술을 실컷 먹인 뒤에,어두운 길로 나섰다. 나는, 어느 전장에 갔다. 무변광야다.대포 소리는 나지만 어디서 나는지 도 모르겠다. 나 있는 데에는 대단히 밝되 저편은 밤과 같다.총알이 하나, 내 배에 맞았다. 나는 꺼꾸러졌다. 총 맞은 데가 가렵다.누가 와서 발을 잡아당긴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도로 어두운 데로 향하 였다.비슷비슷한 꿈을 수십 개 꾼 뒤에 깼다. 나는 어느덧 내 침대 위에 있고 밤이 되었다.
조각글ㆍ7 입원한 지 두 달, 수술한 지 한 달에 겨우 퇴원하게 되었다.조선유수의 의학자라는 자에게 죽음을 선고받았던 나는, 그래도 다시 살아서 퇴원하게 되었다.4년 만에, 너울너울한 조선복을 입고, 나는 편안히 안락의자에 걸터앉았 다. 나는 살아났다,거짓말 같다. 나는 퇴원한다, 더욱 거짓말 같다. 내 죽은 혼이,그래도 아직 인간 사회에 마음이 있어 헤맨다. 이것이 겨우 정말 같다. 전차가 지나간다.저것도 다시 탈 수 있다. 사람들이 다닌다, 나도 저 사람과 같이 되었다. 아, 이것이 참말인가?담배를 먹을 수 있다, 여기 이르러서는, 다만 공축(恐縮)할밖에는 도리가 없다. “기차 시간 되었네.” “자, 이젠 가자.” R의 소리와 어머니의 소리가 함께 내 귀를 친다.“다시 살아서 여행을 떠난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하면서 나는 그들을 따랐다. 그러나,R과 S의 작별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큰 거리에 나서서 저편에 와 글거리는 사람 떼를 볼 때에,조금씩 조금씩 머리에 기쁨이 떠오른다. ‘맨날 죽음과 삶 사이에 떠돌며,무서운 소리로 부르짖는 저 무리들에게 도 하루바삐 나와 같은 기쁜 경우가 이르기를 원하며 마지않는다.’ 나는 생각하면서, 너울너울, 어머니와 함께 사람들에 끼면서 담배를 붙여 물었다.
나는 보기를 끝내고 M을 보았다. M은 내 책상 위에서 어떤 잡지를 보고 있 었다. 무슨 일이냐,사람의 목숨을 이와 같이 보증할 수가 없느냐. 내가 맨날 다 루는 곤충도,빛으로 살로 그들의 목숨을 보증하며 짐승들도 그들의 체질로 써 목숨을 보증할 수가 있는데,동물의 영이라는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까 지 철저한 자기로서는 보증할 수가 없고,이와 같이 위험하기 한없는 의사 에게 달렸다고야, 이 무슨 일이냐, 이 무슨 일이냐.M으로서 만약, 대진의 벗이 없었던들 오늘날 저와 같이 생기로 찬 몸을 얻어가지고 다시 만났을 수가 있을까?나는 M을 찾았다. “M.” “다 보았나?”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꺼정 보증할 수 없는 물건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의사의 오진으로 몇 천만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버렸을지, 생각하면 무섭데!” “자넨 다행이네, 살아나서!” “그렇지, 내게는 R이라는 좋은 벗이 있었기에…….” “살아났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을…….” 나는 그의 말을 이었다. “그래.” 나는 좀 높은 곳에 있는 우리 집에서,내려다보이는 장안을 둘러보았다. 거기 먼지가 보얀 것은 억조창생이 삶을 즐기는 것을 나타낸다.아아, 그러 나 그들의 목숨을 누가 보증할까?의사의 조그마한 오진으로 그들은, 금년 에라도, 이달에라도 죽을지 모를 것을……. 나는 다시 M을 보았다. 건강. 그것의 상징이라는 듯한 그의 둥그런 얼굴은, 빛나는 눈으로써 나를 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