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준 독삼탕(獨蔘湯)을 마시고 문간에서 발발 떠는 그와 작별한 나는 인적 없는 쓸쓸한 거리로 나왔다.식전꼭두는 치웠다. 몹시 치웠다. 치움 그것 이었다. 쓰라리는 발은 자욱자욱이 얼어붙는 듯하였다.귀가 떨어지는것 같다. 발갛게 단 쇠가 얼굴에 척척 달라붙는 것 같다.앞으로 휙하고 닥치는 매운 바람은 나의 몸을 썩은 나뭇가지나 무엇처럼 지끈지끈 부수며 세포 속속들이 불어 들어가는 듯싶었다.'다시는 이런 짓을 아니하리라.’ 나는 다시곰 생각하였다.어머님은 고종 사촌 혼인 구경 겸 소풍 겸 동래에 나려가시고 집에 계시지 않았다.할머님만 속이면 그뿐이다. 어젯밤은 여러 친구에게 끌리어 청량사( 淸凉寺)에 나갔다가 술이 취해서 못 왔다는 것을 돌차간(咄嗟間)에 생각 해내었다. 아랫목에 쪼그리고 앉아 계시던 할머님은 샐쭉한 입을 두 가장자리를 동 글게 호로형(壺蘆形)으로 여시며,"못 된 데만 아니 갔으면, 못된 데만 아니 갔으면."하고 소근거리셨다."늦게 졸고 보니 전차가 끈쳤겠지요. 어데 올 수 있습니까?하는 수 없 이 자고 왔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꾸며댄 후 나는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나는 빙그레 웃었다. 머리를 빗고 있던 안해도 빙그레 웃으며,"인제 속이 시원하지요?" 하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빛은 피로 물들인 것 같았다.나는 고만 나무 둥치같이 곤한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오종(午種) 가까이 되어 간신히 안해에게 깨이어 일어난 나는 냉수로 세수(洗嗽)를 하면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사(社)에 들어가기는 갔으되 머리가 뿌연 안개에 깔린 듯이 몽롱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그저 자고만 싶었다.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또 다시 죽은 듯이 잠이 들고 말았다.그 이튿날 잠을 깨자 제일 먼저 해결해야 될 것은 그것을 어째 치를까 하는 문제이었다.말할 것도 없이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머니에서 잘 각거리는 몇 푼 동전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많지 않은 월급이라도 또박또박 타기나 하였으면 그믐을 하로밖에 아니 지낸 때이니 그것 수세할 것이야 남았으련만 곤란이 도극(到極)한 ○○사(社)는 사원 월급 지불은커녕 신 문 박을 종이도 못 사서 쩔쩔매는 판이다. 집으로 말하여도 아들의 방탕에 이바지 할 재정은 없었다. 그러나 몇 십 원 장만할 거리는 나에게 있었나니 그것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국제 18금 시계였다. 오랜 것이라 모양이 이쁘지 않은 대신 투박하고 튼튼하며 달리아 꽃도 앞 뒤 뚜껑에 아로새겼고 기계에 보석조차 박힌 값진 물건이었다."이것만 잡히면, 4,50원이야 얻겠지." 춘심이 집에 가던 날이나 이제나 힘 미덥게 생각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전당포를 찾아다녔다. 조심 많은 흰옷 입은 취리(取利)꾼들은 이 속모를 물건을 퇴각하기에 서슴지 않았다. 어느 일본 질옥(質屋)에서 35 원에 잡히는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문제는 전달할 수단이었다.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내고 아주 끈을 떼어버리려 하였다. 양심의 반성도 맹렬하였거니와 한 번 겪어 보니 그 탐탐스럽지도 않았음이라. 그러나 야릇한 염려가 나로 하여금 주저 하게하였다. 봉투에 넣어 보내는 것은 많은 금액에만 쓰는 격식인 것 같았다. 더구나 그리함은 그와 나의 사이를 이도(利刀)로 싹 비어 버리는 것 같다. 그는 실망하리라. 실망한 그만치 나를 욕하리라. 영구히 그를 대할 낯이 없으리라 하매 어째 차마 못할 일인 듯싶었다. 끊는 데도 톱으로 슬근슬근 나무 썰 듯 누그러운 방법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그것은 꾸며대는 소리일다!정말 끊으려면 저야 실망을 하든 욕을 하든 대 할 낯이 없든, 꺼릴 것이 무엇이냐?!그런 염려를 하는 것은 끊으려면 서아니 끊으려는 것이다!’ 나는 마음 어데인지 이런 가책을 느꼈다.'끊고 아니 끊는 문제보담도 네가 침닉(沈溺)이 될까 아니 될까가 더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빠지지만 않으면 그뿐이 아니냐?슬근슬근 정을 붙여 둔 들 너에게 해로울 것이야 무엇 있나?울적하고 무료할 제 일시의 위안 거리는 꽤 될 것이다.’ 다른 소리가 또 이렇게 변명하는 듯하였다.마츰내 이런 결론을 얻었다.'이왕이면 한번 보기나 하자,그 역시 사람이니 너무 매몰스럽게 함은 내 도리가 아니다.’ 맨숭맨숭한 정신으로야 직접으로 돈을 건넬 수 없었다.어느 요리점에 다리고 가서 자미있게 놀다가 그도 취하고 나도 취한 후 그의 품속에 슬그머니 넣어주리라 하였다.여기에 대하여 안해는 극렬히 반대하였다. 안해의 태도는 하롯밤 사이에 돌변 하였다.그의 주장을 의지하면 그런 짓은 성공도 하고 재산도 넉넉한 뒤에 할 일이었다.하롯밤이면 무던하지 이틀 밤부터는 과한 짓이었다.참말 끈을 떼려 할진댄 춘심을 아니 보는 것이 상책인 동시에 돈을 봉투에 넣어 보냄이 지당한 일이었다.그리고 돈도 다 줄 것이 아니니 20 원이면 넉넉하였다.10 원은 내가 쓰고 5 원은 자기가 써야 되겠노라 하였다."무슨 짝에 35 원템이나 주어요?만날 용돈이 없어 허덕지덕하면서. 나도 한 5 원 있어야 되겠어요.먹고 싶은 것 좀 사서 먹을 터이야요." 안해는 이렇게 말을 마치었다.태기 있는 지 삼사 개월 되는 그는 불가 항의 힘으로 도미국이 먹고 싶었다.물 많은 배(梨[이])가 먹고 싶었다. 나는이 요구를 아니 들을 수 없었다.그리고는 돈만 치르고 열 점이 아니 넘어 돌아올 것을 재삼 타이른 후 나는 춘심의 집으로 왔다."오늘은 오실 줄 알고 아모 데도 아니 갔지." 춘심은 웃는 낯으로 나를 맞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그는 못 알아보리만큼 어여뻤다. 끊으리 말리 한 것이 죄송할 지경이었다.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도원으로 나는 춘심을 끌고 왔다.우리는 한동안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다.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였다. 홀연 춘심은 내 손을 잡아다리어 제 바지를 만져 보이며,"퍽도 뻣뻣하지요. 따뜻하라고 서양목(西洋木)으로 바지를 해 입었더니만…….""툭툭한 게 좋구먼." 나는 무심한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춘심의 그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것 같았다.사치만 일삼는 시체(時體) 기생과 다른 저의 질소(質素)를 자랑 함 일까?또는 명주(明紬)바지를 해 달란 말인가?마츰 그 때에 그는 게으르게 기지개를 켠다. 누구에게 절이나 할 것처럼 깍지 낀 손을 내어밀었다.나는 반지 하나 없는 그의 손가락을 보았다.명월관 지점에서 처음 만나던 때에 나는 그의 손가락에 적어도 두어 개 반지가 끼인 것을 보았다.나는아까 의심조차 한꺼번에 푼 듯싶었다."흥, 내가 반지를 해 줄까 하고." 나는 속으로 '요년!’싶었다. 그러면서 해 주고도 싶었다.묵연( 黙然) 의 욕망을 못 채워 주는 것이 남아(男兒)로 치욕인 듯도 하였다.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의사 표시를 보기 전에 한시바삐 주려던 돈을 주었으면 하였다.그러나 요리 값이 얼마인지 알 수 없어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고만 가요." 그는 후끈후끈 단 뺨을 나의 어깨에 쓰러뜨리며, 나의 마음을 안 듯이 소 근거 렸 다.요리 값은 8 원 얼마이었다. 나는 남은 돈 20 원을 쥔 주먹을 내어 밀며,"저어…… 이 것 담배용에나 보태 써라." 라고 나는 목에 걸린 소리로 머뭇머뭇하였다.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며,"싫어요, 싫어요." 하고 부르짖었다."얼마 아니 된다마는 정으로 받으렴. 돈이 아니고 정이다.""기생은 돈 주어야 정 붙는 줄 언제부터 알았소?흥 돈!돈!기 생년 은정을 정으로 못 찾고 돈으로 찾는담!" 하고, 춘심은 한숨을 내어쉬었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흥, 돈이 정, 정이 돈!기생년의 팔자란!" 춘심은 또 한번 괴로운 한숨을 토하였다.애닯은 슬픔에 쌓인 그 뜨거운 입김이 마치 나의 심장을 스치는 듯하였다. 그도 사람이다, 여성이다.시들고 곯아졌을지언정, 뜯기고 짓밟히었을지언정, 그의 가슴에도 사랑의 움은 있으리라.지금 그 말은 인몰(湮沒)해 가는 사랑의 애끊는 신음이리라.나는 마치 그 사랑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그를 휩싸 안았다.나는 그의 가슴에 온 미( 溫味) 와 고동을 느꼈다.마치 그의 사랑이 나에게 이렇게 속살거리는 듯 하였다."나는 다 식지 않았습니다.오히려 봄날과 같이 따뜻합니다. 나의 숨은아주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맥이 뜁니다. 오오!나를 덥혀 주셔요!북 돋워 주셔요!그 말에 응하는 것처럼 나의 목소리도 소근거렸다."덥혀 주고 말고. 북돋워 주고 말고. 아아 불쌍한 사랑의 넋이여!" 우리는 십 분 동안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진 뒤에도 우리는 어깨를 겨누고 같이 걸었다. 돌아온 데는 물론 그의 집이다!그러나 나는 그의 만 토 포켓 안에 지폐 두 장을 넣고 말았다.
9
내일 단성사 ○○권번(券番) ─ 춘심의 다니는 조합 ─ 온 습회( 溫習會)에서 다시 만남을 기약하고 나는 아츰 늦게야 그의 집을 떠났다.그만큼 대담스럽게 도 되었다. 그만치 애련도 깊었다.5분 전에 잠깐 어데 나갔다 오는 사람같이 신추럽게 돌아왔다.비난과 책망을 미연에 막기 위하여 엄연히 긴장한 얼굴로 건넌방에 들어왔다. 안 해는 없었다.그 대신 나의 책상 위에 무슨 글발이 있었다. 그것은 안해의 필적 이었다.─
전일에는 이 몸을 사랑하시옵더니 인제는 이 몸을 버리시니 슬프고 애닯은 심사 둘 데 없사와 이 세상을 떠나려 하나이다.이 몸이야 죽사온들 아까울 것 없건마는 다만 뱃속에 든 어린 것 불쌍코 가련하옵니다.두루막은 다리어 장 안에 넣어 두었으니 이 몸 보는 듯이 입으시기 바라나이다.길이 못 뵈올 것을 생각하온즉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사외다.다행히 모진 목숨이 끊어지지 않사오면 다시 뵈옵고 첩첩이 쌓인 섧은 사정을 하소연 할까 하옵니다.
나는 매우 감동되었다. 정말 유언장을 본 것 같이 가슴이 찌르르 하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물론 거짓이고 희롱인 줄이야 모름이 아니로되 거짓 이 면서도 거짓이 아닌 듯싶었다. 혹 사실이나 아닐는지!"할멈!아씨 어데로 가셨나?" 나는 마루로 뛰어나가며 허전허전하는 소리를 떨었다."몰라요!왜 방에 아니 계셔요?" 밥을 먹는 듯한 할멈은 제 방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실이나 아닐까?나는 안방으로 건넌방으로 주방으로 뒷간으로 허둥거리며 찾아다녔다……. 안해의 그림자는 볼 수 없다!"아씨 어데 가셨어?어서 알으켜 달라니까그래." 나는 광 속에 들어갔다 나오며 다시금 부르짖었다.대답은 없고 히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행랑방 문을 열어 보았다."아씨가 여기 계실라고요." 할아범은 왼 얼굴에 주름을 밀며 태평건곤(泰平乾坤)으로 빙그레 하였다.마츰내 나는 다락 속에 숨은 안해를 발견하였다."여기 있구먼." 나는 죽은 이가 살아온 것처럼 반갑게 부르짖었다.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때도 이만치 기쁘지 않았으리라. 안해는 웃으며 나려왔다. "다락이 저승이야?" 우리가 건넌방으로 단둘이 들어 왔을 제 나는 웃으며 그를 조롱하였다.은닉자도 방글방글 웃고만 있었다."그것이 무슨 짓이람?유언을 써 놓았으면 죽을 것이지 왜 다락 속에 들어 앉았담?""왜 모진 목숨이 끊기지 않으면 다시 만나자 하지 않았어요?" 하고 안해는 해죽 웃었다."이번은 그랬지만 한 번만 더 가 보아요. 정말 아니 죽나." 안해의 얼굴빛은 갑자기 바뀌어졌다. 슬픔의 그림자에 그의 얼굴은 그늘 지고 말았다."참 그렇게 날 속일 줄은 몰랐습니다.돈만 주고 열 점 안으로 오 신다해 놓고 아니 오시는 데가 어데 있습니까……?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암만 기다리니 어데 오셔야지요. 새로 한 점을 치고, 두 점을 치고,석 점을 치겠지요. 그제야 아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자려고 해도 잠은 아니오고 그년을 쓸어안고 있는 꼴만 보이겠지요……. 참말 애닯고 슬퍼서 견딜수 없었습니다. 고만 죽고 몰랐으면 하였습니다.그래 요 앞 우물에 빠질까 하였습니다.내가 한 것에 왜 남의 손을 대이랴 하고 밤중에 일어나 당신의 두루 막을 다렸습니다.내 손에 옷 얻어 입기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하니……." 말을 마치지 못하여 그의 코가 연분홍색을 띠워 실룩실룩 경련하기 시작 하였다.그러자마자 두 줄기 눈물이 흰 선을 그리며 뺨으로 흘렀다. 뒤미처 투명한 액체는 흐르고 또 흐른다.이것을 보고야 아모리 춘심의 지 주 망( 蜘 蛛網)에 감긴 나인들 어찌 그의 고충을 살피지 못하랴.실행은 안 했지 만사( 死) 를 생각한 것은 해보담도 명백한 일이다.그런 생각이 든 것만큼 그의 속은 쓰렸으리라, 아팠으리라."울기는 왜, 울기는 왜?" 라고 나는 위로하였다. 그러나 나의 눈도 젖기 비롯하였다. 속눈썹에 뜨거운 눈물이 몰림을 느꼈다. "또 가시렵니까, 또 가시렵니까?" 이윽고 안해는 울음에 껄떡이며 다그쳤다."또 갈 리 있나, 또 갈 리 있나." 말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맹서하였다. 그러나 춘심과 만나자고 기약한 때는 왔다!그 이튿날 저녁이다. 단성사에 갈까 말까……. 이것은 해결키 어려운 문제였다. 암만해도 가고 싶다. 가도 무방할 핑계를 얻으려고 애를 썼다.단성사는 춘심의 집이 아니다. 공공의 구경터다. 춘심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또 이번 흥행은 ○○○양악대(洋樂隊)에 기부하기 위하여 우리 사(社)에서 주최한 것이니가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누구가 나를 보더라도 춘심을 만나려고 오지 못할 데를 왔단 말은 아니할 것이다.아니 가는 것이 도리어 남으로 하여금 이상하게 여기게 할 것이다.또 춘심을 만날 기회는 이 후라도 많을지니 보아도 수류 운공(水流雲空)할 시련이 필요하다.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정을 끊기 위해서 반드시 가 보아야 되리라.이유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혼자 가기가 무엇하던 차, 마츰 C가 구경 가자고 왔다.나는 즐거이 따라 나섰다. 여덟 점 가까이 되었을 때라 위층에 아래층에 할 것 없이 관람석은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휘황한 불빛도 담배 연기와 사람의 입김에 흐리 멍텅 하였다. 나는 압박과 질식을 느끼었다.나의 눈은 부인석에서 춘심을 찾고 있었다. 눈코는 분석할 수 없고,분면( 粉面) 의 윤곽만 총총히 인형같이 꽂혀 있다. 모다 춘심이 같으면서 모다 아니었다."저 무대 뒤로 들어갑시다. 거기는 난로도 있고 차도 있으니, 그리고 구경 하기도 좋을 터이지." 하고 C는 나를 그리로 끌었다. 거기에는 푸른 것, 붉은 것, 누런 것,가지가지 의상이 눈을 현란케 하며, 모다 비슷비슷한 기생이 우물우물하였다.특별히 못생긴 것도 없고 특별히 잘난 것도 없었다.향기는 고만두고 썩어가는 몸과 마음의 송장 냄새가 그곳 일면에 자욱하였다.나는 일종의 공포 와 구역을 느꼈다. 그야말로 계집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그 가운데에도 춘 심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이러다 춘심을 만나면 어찌할꼬?" 나는 문득 생각하였다. 만나면 또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지나 않을까?아니 끌린다 하자. 그러면 보아서 무엇할 것인가?멀리서 그도 나를 보고나도 그를 본다. 보고 흩어진다. 싱거운 일이로다!싱겁게 아니 하려면 돌아가는 길에 술잔이나 나누어야 되리라. 적어도 인력거나 태워 보내야 된다.그러하거늘 나의 주머니에는 벌써 쇠천 샐 닢도 없다. 만나면 큰일이다!"고만 가요." 나는 C한테 턱없는 요구를 하였다."왔다가 구경도 아니 하고 가잔 말이야?" 춘심이와 막 마주칠까 하는 공겁심(恐怯心)이 머리를 쳐들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견딜 수 없다.몇 번 C를 졸랐건만 그는 내 말에 귀도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였다."가고 싶거든 혼자 가구려." C는 마츰내 성가신 듯이 말을 던지고 어느 기생과 이야기하기에 골몰 하였다.나는 하릴없이 또 머뭇머뭇하였다. 그럴 사이에 어째 건너편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회색 만토에 까만 하부다에 수건을 두른 춘심이가 어느 결엔 지 거기 와 있다!다행히 나는 저를 보았건만, 저는 나를 못 알아본 모양 이었다. 나는 불시에 돌아섰다.무대로 드나드는 왼편 문은 잠겨 있다. 나가려면 춘심의 곁을 지나야 되겠다!이야말로 진퇴 유곡일다!그래도 되든 말든 두 판 집고 한 번 나가나 보자. 나는 그리로 향하고 급히 걸었다.일평생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을 단행할 때처럼 나는 더할 수 없이 흥분하였다. 그는 나를 보았다!둘의 거리는 한 자도 아니 된다. 마츰 지나치는 사람은 많고 그 곳은 좁았다.나는 춘심에게 외면을 하고 사람 틈바구니에 휩쓸 리어 쏜살같이 난관을 넘으려 하였다.나 좀 보아요 하는 듯이 그는 살금살금 나의 외투 자락을 잡아다리었다.그 찰나에 나의 발길이 머뭇 하려다 뒷 사람에게 밀리어 휙 빠져 나왔다. 문간을 나섰다.안심의 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후회가 뒤미쳤다. 범치 못할 죄악을 범한 듯 하였다.얼른 본 춘심의 얼굴은 전보담 십 배 백 배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그 가야금 병창을 못 견디리만큼 듣고 싶었다. 도로 들어갈까?문지기 보기가 부끄러워 그럴 수 없다. 발이 뒤로 당길 듯 당길 듯하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옮겨졌다.가슴은 미친 바람에 뒤집히는 바다 모양으로 울렁거 리었다. 머리는 벼락에 맞은 듯하였다.어느 때 시작된 지 모르는 빗줄 이 얼굴을 따렸건만 찬 줄도 몰랐다.분화산 모양으로 왼 몸이 뭉을뭉을 타는듯 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나로는 알 수 없다.심리학자는 설명하고 싶은대로 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