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죽음
‘조모주 병환 위독.’ 삼월 그믐날, 나는 이런 전보를 받았다.이는 ××에 있는 생가에서 놓은 것이니 물론 생가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단 말이다.병환이 위독은 하다 해도 기실 모나게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니라,벌써 여든을 둘이나 넘은 그 할머니는 작년 봄부터 시름시름 기운이 쇠진해서 가끔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그동안 자손들로 하여금 한두 번 바쁜 걸음을 아니 치게 하였다. 그 할머니의 오 년 맏이인 양조모는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이승에서는 다시 못 보겠다. 동세라도 의로 말하면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육십 년을 하로같이 어데 뜻 한번 거슬려 보았을까 …….” 연해연방 이런 넋두리를 섞어 가며 양조모는 울었다.운다 하여도 눈 가장 자리가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릴 뿐이었다.워낙 연만한 그는 제법 울음답게 울 근력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 할머님은 팔자가 좋으시다.자손이 늘은 듯하고…… 아이 고.” 끝으로 이런 말을 하며 울음이 한숨으로 변하였다.자기가 너무 수(壽)한 까닭으로 외동자들을 앞세워, 원(怨)이 되고 한이 되어,노상 자기의 생을 저주하는 그는 아들이 둘 (본래 셋이더니 그 중에 중부(仲父)가 일찍이 돌 아갔다),직손자가 여덟이나 되는 그 할머니를 언제든지 부러워하였다. “지금 돌아가시면 호상(好喪)이지.아드님의 백발이 허연데.” 라고, 양모도 맞방망이를 치며 눈을 멍하게 뜬다.나도 과연 그렇기도 하겠 다 싶었다. 나는 그날 밤차로 ××를 향하고 떠났다.새로 석 점이 지나 기차를 나린 나는 벌써 돌아 가시지나 않았나고, 염려 를 마지않으며,캄캄한 좁은 골목을 돌아들어 생가의 삽작[柴扉] 가까이 다 다를 제,곡성이 나는 듯 나는 듯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하건만 다행 히 그 불길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삽작은 빠끔히 열려 있었다.마당에 들어서니 추녀 끝에 달린 그름 앉은 괘등이 간 반밖에 아니 되는 마루와 좁직한 뜰을 쓸쓸하게 비쳐 있었다.우물뚝과 장독간의 사이에, 위 는 거적으로 덮고 양 가는 삿자리로 두른 울막을 보고,나는 가슴이 덜컥하 고 나려앉았다. ─ 상청(喪廳)이 아닌가?…… 그러나 나의 어림짐작은 틀리었다. 마루에 올라선 내가 안방,아랫방에서 뛰어나온 잠 못 잔 피로한 얼골들에게 이끌리어,할머니의 거처하는 단칸 건넌방으로 들어가니,할머니는 깔아진 듯이 아랫목에 누웠으되 오히려 숨 은 붙어 있었다.그 앞에 앉는 나를 생선의 그것 같은 흐릿한 눈자위로 의 아롭게 바라본다. “얘가 누구입니까?어머니, 얘가 누구입니까?” 예안 이씨(禮安李氏)로 예절 알기와 효성 있기로 집안 중에 유명한 중모 (仲母)는 나를 가리키며 병자의 귀에 대고 부르짖었다. “몰라…….” 환자는 담이 그르렁그르렁하면서 귀찮은 듯이 대꾸하였다. “제가 누구입니까?할머니!” 나는 그 검버섯이 어룽어룽한 뼈만 남은 손을 만지며 물어 보았다. 나의 소리는 떨리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제가 ○○이 아닙니까?” “응, 네가 ○○이냐…….” 우는 듯이 이런 말을 하고, 그윽하나마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는 듯하였 다.그 개개풀린 눈동자 가운데도 반기는 빛이 역력히 움직였다.할머니의 병환이 어젯밤에는 매우 위중해서 모두 밤새움을 한 일, 누구누 구 자손을 찾던 일,그 중에 내 이름도 부르던 일, 지금은 팔결 돌린 일……, 온갖 것을 중모는 나에게 알으켜 주었다.나는 그날 밤을 누울락 앉으락 깰락 졸락 할머니 곁에서 밝히었다.모였던 자손들이 제각기 돌아간 뒤에도 중모만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불교 의 독신자인 그는 잠 오는 눈을 비비기도 하고 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기도 하면서 밤새도록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그 소리는 적적한 새벽녘에 해가 (薤歌)와 같이 처량히 들리었다.나는 새삼스럽게 그 효심의 지극함과 그 정성의 놀라움에 탄복하였다.
아츰저녁으로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방이라 야 단지 셋밖에 없는데,안방은 어머니, 형수들이 점령하고, 뜰 아랫방 하 나 있는 것은 아버지, 삼촌,당숙들에게 빼앗긴 우리 젊은이 패 ─ 사육촌 형제들은 밤이 되어도 단 한 시간을 눈 붙일 곳이 없었다.이웃집과 누누이 교섭한 끝에 방 한 칸을 빌려서 번차례로 조금씩 쉬기로 하였다.이 짧은 휴식이나마 곰부임부 교란되었나니 그것은 삼 분 들이로 집에서 불러 들이 는 까닭이다.아버지와 삼촌네들의 큰 심부름, 잔심부름도 적지 않았지만 할머니 곁에 혼자 앉은 중모의 꾸준한 명령일 때가 많았다.더욱이 밤새 한 시에나 두 시에나 간신히 잠을 들어 꿀보담 더 단잠이 왼 몸에 나른하게 퍼 진 새벽녘에,우리는 끄들리어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할머님 병환이 이렇듯 위중하신데 너희는 태평 치고 잠을 잔단 말이 냐?” 우리가 건넌방에 들어서면 그는 다짜고짜로 야단을 쳤다.그 중에도 가장 나이 어리고 만만한 내가 이 꾸중받이가 되었다.인정 사정없는 그의 태도 가 불쾌는 하였지만 도덕적 우월을 아는 우리는 대꾸 한 마디 할 수 없었 다.“다들 뭐란 말이냐. 나는 한 달이나 밤을 새웠다. 며칠들이나 된다고.” 졸음 오는 눈을 비비는 우리를 보고 그는 자랑스럽게 또 이런 꾸중도 하였 다.‘놀라운 효성을 부리는 게 도모지 우리 야단 칠 밑천을 장만하는 게로구 나.’ 나는 속으로 꿀꺽꿀꺽하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한 번은 또 그의 명령으로 우리는 건넌방에 모여들었다.그 방문은 열어젖 히었는데 문지방 위에 할머니의 지팽이가 놓이고 그 밑에 또 신으시던 신이 놓여 있었다.방안 할머니의 머리맡 벽에는 다라니(陀羅尼)가 걸리었다. “할머니가 운명을 하시나 부다!” 우리는 번개같이 이런 생각을 하며 할머니 곁으로 다가들었다.그는 담을 그르렁거리며 혼혼(昏昏)히 누워 있었다. 중모는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 하며,그의 귀에 들이대고 울음소리로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을 구슬프게 부 르짖고 있었다.한동안 엄숙한 긴장이 여기 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기대하면서. 십 분!이십 분!환자의 신상에는 아모 별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잠이 드신 모양입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이 긴장한 침묵을 깨뜨렸다. 그리고 중모를 향하여,“잠 주무시게스리 염불을 고만 외십시오.” 하고 나가 버렸다.그 뒤를 따라 빽빽하게 들어섰던 자손들이 하나씩 둘씩 헤어졌다.그래도 눈물을 섞어가며 염불을 마지않던 중모가 얼마 뒤에 제물에 부처님 찾기를 끈치었다.그리고 끝끝내 남아 있던 나에게, 할머니가 중모가 왔다 고 하던 일,자기를 다리러 교군이 왔다던 일, 중모의 손을 잡아 비틀며 어 서가자고 야단을 치던 일을 이야기하였다.그러다가 숨구녕에서 무엇이 꿀 꺽하더니 고만 저렇게 정신을 잃으신 것을 설명해 듣기었다.그 날 저녁 때에 할머니는 여상히 깨어났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 었다.몇 번이나 신과 지팡이가 놓였다 치웠다, 다라니가 벽에 걸리었다 떼 였다하였다.그러는 동안에 자손의 얼골은 자꾸 자꾸 축이 나 갔었다.말하 기는 안되었지만 모두 불언 중에 할머니의 하로바삐 끝장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관조차 맞추어서 칠까지 먹여 놓았다.내가 처음 오던 날 상청이 아닌가고 놀래던 그 울막도 이 관을 놓아두려는 의지간이었다.그러하건만 할머니는 연해 한 모양으로 그물그물하다가 또 정신을 차리었 다. 아니,정신이 돌아오는 때가 도리어 많아 간다. 자기 앞에 들어서는 자 손들을,거의 틀림없이 알아맞히었다. 그리고 가끔 몸부림을 치면서 일으켜 달라고 야단을 쳤다.이럴 때에 중모 는 기벽스럽게도 염불을 모시었다. “어머니 어머니, 가만히 계셔요, 가만히 계셔요.” 그는 몸부림하는 할머니를 제지하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저를 따라 염불을 외셔요. 나무아미타불,나무아비타불.” “나 일어날란다.” “에그, 왜 그러셔요?가만히 계셔요, 제발 덕분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 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할머니는 마지못하여 중모를 따라 두어 번 입술을 달싹달싹하더니,또 얼 골을 찡그리며 애원하는 어조로, “인제 고만 뫼시고 날 좀 일으켜 다고.내 인제 고만 가련다.” “인제 가셔요!가만히 누워 가시지요. 왜 일어나시긴. 나무아미타불…… 왕생극락…… 나무아미타불…….” 할머니는 귀찮아 못 견디겠다는 듯이 팔을 내어저으며, “듣기 싫다!염불소리 듣기 싫다!인제 고만 해라.” 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중모는 질색을 하며 더욱 비장하게 부처님을 찾았다. “듣기 싫다!듣기 싫어. 나는 고만 갈 테야.” 할머니는 또 이렇게 재우쳤다.나는 이 광경을 보고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 할머니는 중모보담 못하 잖은 불교의 독신자이다.몇십 년을 하로같이 새벽마다 만수향을 켜 놓고, 염불 모시기를 잊지 않은 어른이다.정신이 혼혼된 뒤에도 염주 담은 상자 와 만수향만은 일일이 아랑곳하던 어른이다. “……하로도 만수향을 세 갑 네 갑 켜시겠지.금방 사다 드리면 세 개씩 네 개 씩 당장 다 켜 버리시고 또 안 사온다고 꾸중이시구나…….” 작년 가을, 내가 귀성하였을 제, 계모가 웃으며,할머니의 노망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만수향 켜는 것을 그 하나로 헤아렸다.그리하던 할머니가 왜 지금 와서 염불을 듣기 싫다는가?그다지 할머니는 일어나고 싶으신가?죽어 가면서도 일어나려는 이 본능 앞에는 모든 것이 권위를 잃는 것인가?“저렇게 일어나시려니 좀 일으켜 드리지요.” 나는 보다 못해 이런 말을 하였다. “안 된다,일으켜 드릴 수가 없다. 하도 저러시길래 한 번 일으켜 드렸더 니 어떻게 아파하시는지 차마 뵈올 수가 없었다. ” “어째 그래요?” 나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이 반문에 대한 중모의 설명은 더욱 놀랠 것이 었다.할머니가 작년 봄부터 맑은 정신을 잃은 결과에 늙은이가 어린애 된다고 뒤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게다가 이 두어 달 전부터 무엇을 자꾸 청해 잡 수시고 옷에고 욧바닥에 함부로 뒤를 보았다.그것을 얼른 빨아 드리지 못 한 때문에 제물에 뭉켜지고 말라붙은 데다가 뜨거운 불목에 데이어,궁둥이 언저리가 모두 벗겨졌다. 그러므로 일어나려면 그 곳이 땅기고 배기어 아파 하는 것이라 한다.이 말을 들은 나는 할머니를 모로 누이고 그 상처를 보았다.그 자리는 손 바닥 넓이만치나 빨갛게 단 쇠로 지진 듯이 시커멓게 벗겨졌는데 그 위에는 하얀 해가 징그럽게 끼었고 그 가장자리는 독기를 품고 아른아른히 부르터 올라 있다. 나는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이것이 무슨 일인가!양조모, 양모가 부러워하던 늘은 듯한 자손은 다 무 엇을 하고 우리 할머니를 이 지경이 되게 하였는가?왜 자조 옷을 갈아 입 혀드리며 빨아 드리지 못하였는가?나는 이 직접 책임인 계모가 더할 수 없 이 괘씸하였다.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를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위에도 말하였거 니와 할머니가 이리 된 지는 하로 이틀이 아니다. 벌써 몇 달이 되었다.이 긴 시일에 제 아모리 효부라 한들 하로도 몇 번을 흘리는 뒤를 그 때 족족 빨아낼 수 없으리라.더구나 밤에 그런 것이야 일일이 알 수도 없으리라.하물며 계모는 시집 오던 첫날밤부터 골머리를 앓으리 만큼 큰 병객이다.병명은 의원을 따라 혹은 변두머리라고도 하고, 혹은 뇌진이라고도 하고,혹은 선천부족(先天不足)이라고도 하였지마는 하나도 곤쳐 주지는 못하였 다.삼십이 될락말락 하건만 육십이나 칠십이 다 된 노인 모양으로 주야장 천 자리 보전하고 누워있는 터이다.제 몸이 괴로우니 모든 것이 싫은 것이 다.그리고 나까지 아우르면 아버지 슬하에 아들만 넷이나 되건마는 지금 육십 노경에 받드는 어느 아들 어느 며느리 하나 없다.집안이 넉넉지 못한 탓으로, 사방에 흩어져서 제 입 풀칠하기에 눈코를 못 뜨는 까닭이다.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까?나는 알 수가 없었다. 쓴 물만 입안에 돌뿐이 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