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때 내가 할머니 곁에 갔을 적이었다.할머니는 그 뼈만 남은 손으로 나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아, ○○아!” 할머니는 문득 나를 불렀다. “인제는 다시 못 보겠다, 인제는 다시 못 보겠다. ”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인제 내가 안 죽니?그런데 너 내 청 하나 들어 주겠니?” “네?무슨 말씀입니까?” “나, 날 좀 일으켜 다고.” 나는 눈물이 날 듯이 감동하였다. 어찌 차마 이 청을 떼칠 건가.나는 다 짜고짜로 두 손을 할머니 어깨 밑으로 넣으려 하였다.이것을 본 중모는 깜 짝놀라며 나를 말리었다. “얘, 네가 왜 또 그러니?일으켜 드리면 아파하신대도 그 애가 그러네.” “그 때 약을 사다 드렸으니 그 자리가 인제는 아물었겠지요.” 나는 데었단 말을 듣는 그 날,약 사다 드린 것을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 였다. “아니야, 아즉 다 낫지 않았어.오늘 아츰에도 일으켜 드렸더니 몹시 아 파 하시더라.” 나는 주춤하였다.할머니의 앓는 것이 애처로웠음이다. “어머니!어머니!가만히 누워 계셔요. 네?일어나시면 아프십니다.” 중모는 또 잔상히 타이르듯 말하였다.할머니는 물끄러미 나와 중모를 번 갈아 보시더니 단념한 듯이 눈을 감았다.한참 앉아 있다가 나는 몸을 일으 켰다. 이 때에 할머니가 눈을 번쩍 뜨며 문득, “어데를 가?” 라고 물었다. 나는 주춤 발길을 멈추었다.할머니는 퀭한 눈으로 이윽히 나를 쳐다보더니 무엇을 잡을 듯이 손을 내 어 저으며 우는 듯한 소리로, “서방님!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서방님!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었다. “에그머니!그게 무슨 말씀입니까?그 애가 ○○이 아닙니까?서방님이 무엇이야요?” 중모는 바싹 할머니에게 다가들며 애처롭게 알으켜 드렸다.이 때 마츰 할 머니의 잡수실 배(梨)즙을 가지고 들어오던 둘째 형수가 무슨 구경거리나 생긴 듯이 안방을 향하고 외쳤다.“에그 할머니 좀 보아요. 서울 아지버님더러 서방님!서방님!하십니 다.” 이 외침을 듣고 자부와 손부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은 호기심에 번쩍 이고 있었다.나는 또 할머니의 청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그것이 어떠한 나쁜 영향을 초치(招致)할지라도 아니 일으켜 드릴 수가 없었다.그러나 할머니는 욧바닥 위로 반 자를 떠나지 못하여, “아야야…….” 라고 외마디 소리를 쳤다. 나는 얼른 들어올리던 손을 빼는 수밖에 없었다.다시금 눕기 싫어하던 요 위에 누운 뒤에도 할머니는 앓기를 마지않았다.나는 적지 아니한 꾸중을 모시었다.이윽고 조금 진정이 되더니만 또 팔을 내저으며 기를 쓰고 가슴을 덮은 이 불자락을 자꾸자꾸 밀어 나리었다.감기나 들까 염려하는 중모는 그것을 꾸 준히 도루 집어 올리었다.할머니는 또 손을 내어밀더니 이번에는 내 조끼 단추를 붙잡아 다리었다. “왜 이리 하십니까?단추를 빼란 말씀입니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끄덕였다 하여도 끄덕이려는 의사를 보였을 뿐이었다.나는 단추 한 개를 뺐다. 그래도 할머니는 자꾸 조끼의 단추와 씨름을 마지아니하였다.나는 단추를 낱낱이 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그는 또 옷고름과 실랑이를 시작하였다. “옷고름을 끄를까요?” “응.” 나는 또 옷고름을 끌렀다. 끄른 뒤엔 할머니는 또 소매를 잡아다리었다. “왜 이리 하셔요?” “버 벗어라……. 답답지 않니?” 여기저기서 물어 멈추려고 애쓰는 웃음이 키키 하였다.나는 경멸과 모욕의 시선을 그들에게 던지었다.자기가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하기에 나의 단추 끼운 것과 옷고름 맨 것과 저고리 입은 것조차 답답 해 보일 것이랴!여기는 쓰디쓴 눈물과 살을 저미는 슬픔이 있어야 하겠거 늘 이 기막힌 광경을 조소로 맞아야 옳을까?나는 곧 그들에게 침이라도 배앝고 싶었다. 하되 나의 마음을 냉정하게 살 펴본즉 슬프다!나에게는 그들을 모욕할 권리가 없었다.형수들 앞에서 앞 가슴을 풀어 젖히려는 할머니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였다.환자 를 가엾다 생각하면서도 나의 속 어데인지 웃음이 움직인 것은 부정할 수없 는 사실이었다.더구나 내가 젊은이 패가 모인 이웃집 방에 들어갔을 때 무 슨 자미스러운 일이나 보고 온 사람 모양으로 득의양양히 이 이야기를 하고 서 허리를 분질렀다…….
거기에서는 할머니의 병세에 대하여 의론이 분분하였다. 그들은 하나도 한 가한 이가 없었다.혹은 변호사, 혹은 은행원, 혹은 회사원으로 다 무한년 하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나는 암만해도 내일은 좀 가 보아야 되겠는데…… 나는 그 전보를 보고 벌써 돌아가신 줄 알았어.올 때에 친구들이 북포(北布)니 뭐니 부의(賻儀) 를 주길래,아즉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냐 하니까,그 사람들 말이 돌아가셔도 자손들에겐 그렇게 전보를 놓느니, 하데그려. 그래 모두 받아왔는데…… 허허허…….” 그 중에 제일 연장자로, 쾌활하고 말 잘하는 백형은 웃음 섞어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암만해도 오늘내일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은데…… 이거 큰일 났는 걸. 가는 수도 없고…….” “딴은 곧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아…….” 은행원으로 있는 육촌은 이렇게 맞방망이를 쳤다. “의사를 불러서 진단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부산 방직회사에 다니는 사촌이 이런 제의를 하였다. “옳지. 참 그래 보아야 되겠군.” 아버지께 이 사연을 아뢰었다. “시방 그물그물하시지 않나?그러면 하여간 의원을 좀 불러 올까?” 의원은 아버지와 절친한 김 주부를 청해 오기로 하였다.갓을 쓴 그 의원은 얼마 아니 되어 미륵 같은 몸뚱아리를 환자 방에 나타 내었다.매우 정신을 모으는 듯이 눈을 나리 감고 한나절이나 집맥을 하더 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앉는다.“매우 말씀하기 안되었소마는 아마 오늘밤 아니면 내일은 못 넘길 것 같 소.” 매우 말하기 어려운 듯이, 기실 조금도 말하기 어렵지 않는 듯이 그 의원 은 최후의 판결을 언도하였다.“글쎄 그래. 워낙 노쇠하셔서 오래 부지를 하실 수 없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골로 아버지는 맞방망이를 쳤다. 가려던 자손은 또 붙잡히었다.그러나 할머니는 그 날 저녁부터 한결 돌리 었다. 가끔 잡수실 것을 찾기도 하였다.잡숫는 건 쭉하여야 배즙, 국물에 만 한 술도 안 되는 진지였다.─ 죽과 미음은 입에 대기도 싫어하였다.그 리고 전일에 발라 드린 양약이 효험이 나서 상처가 아물었던지 자부와 손부 에게 부축되어 꽤 오래 일어나 앉아 있게도 되었다.그 이튿날이 무사히 지나가자 한의의 무지를 비소하고,다른 것은 몰라도 환자의 수명이 어느 때까지 계속될 시간 아는 데 들어서는 양의가 나으리란 우리 젊은 패의 주장에 의하여 ○○의원 원장으로 있는 천엽(千葉) 의학사 (醫學士)를 불러 오게 되었다. 그는 진찰한 결과에 다른 증세만 겹치지 않으면 이삼 주일은 무려(無慮)하 리라 하였다. “그래, 그저 그럴 거야. 아즉 괜찮으신데 백주에 서둘고 야단을 하였 지.” 하고 일이 바쁜 백형은 그날 밤으로 떠나갔다. 그 이튿날 아츰이었다. 우리가 집에 돌아오니까 할머니 곁을 떠난 적 없던 중모가 마당에서 한가 롭게 할머니의 뒤 흘린 바지를 빨고 있다가 웃는 낯으로 우리를 맞으며, “할머님이 오늘 아츰에는 혼자 일어나셨다. 시방 진지를 잡수시고 계시 다. 어서 들어가 보아라.” 나는 뛰어 들어갔다. 자부와 손부의 신기해 여기는 시선을 받으면서 할머 니는 정말 진지를 잡숫고 있었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할머니, 어떻게 일어나셨습니까?” 할머니는 합죽한 입을 오물오물하여, 막 떠 넣은 밥 알맹이를 삼키고, “내가 혼자 일어났지, 어떻게 일어나긴. 흉악한 놈들!암만 일으켜 달라 니 어데 일으켜 주어야지. 인제 나 혼자라도 일어난다.” 하며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어제 의원이 왔지요. 인제 할머니가 곧 나으신대요. ” “정말 낫겠다고 하던?응?” 하고, 검버섯 핀 주름을 밀며, 흔연한 웃음의 그림자가 오래간만에 그의 볼 을 스치었다.나의 눈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날 밤차로 모였던 자손들은 제각기 흩어졌다.나도 그 날 밤에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말갛게 개인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고 아 른아른한 아지랑이가 그 하늘거리는 깁 올로 봄 비단을 짜내는 어느 아름다 운 봄날이었다.나는 깨끗하게 춘복을 차리고 친구 몇몇과 우이동 앵화(櫻 花)구경을 막 나가려던 때이었다.이 때에 뜻 아니한 전보 한 장이 닥치었 다. ‘오전 삼시 조모주 별세.’ (『백조』, 1923.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