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여관에 돌아왔다가 나는 곧 다시 나섰다.그것은 ○에게서 ○자기에 게 아내의 품행이 나쁜 것 같다고 가르쳐 준 사람이 A씨임을 들었으므로 A 씨를 찾아가서 좀 구체적으로 알아보려 함이었었다. 그러나 전차로써 의주통(義州通)까지 이를 동안에 나는 A씨 방문을 그만두 기로 하였다. 아직 알지도 못하는 A씨를 찾아가는 것도 싫지만 그것보다도 A씨에게 그런 일을 묻는 것은 ○의 인격을 무시함과 같아서 재미없는 일이 다. 이제○의 취할 길은 그 사건을 남에게 절대로 비인(非認)을 하여 얼마 간이라도 남의 의심을 덜게 하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까지 제 아내의 품행을 의심한다는 것은 ○의 명예를 위하여 결코 취할 길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막(後幕)에 숨어서 결코 ○의 명예를 손상치 않게 사건을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전차를 내려서 곧 돌아서서 벗들과 약속하였던 ××극장에 가서 그때 갓 조직된 어떤 극단의 연극을 구경하고 돌아와 자버렸다. 그러나 이튿날 조반 뒤에는(평생 아무런 큰 일이라도 그리 중대시하지 않 던 나로도) 머리를 움켜쥐고 어제 맡은 사건을 어찌 해결하여야 할지 생각 하여 보았다. 나는 탐정이 아니다. 그런지라 그 사건을 어떤 곳부터 탐정하여 나아가얄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의 아내보다도 먼저 ○를 어떻게든 하여야 할 것은 알 수가 있었다. ○와 같은 사람은 아무런 비경(悲境)에 빠질지라도 자살할 만한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그러매 그 같은 사람으로서 그 같은 경 우에 빠지게 되면, 마치 피를 뱉기까지 우는 뻐꾸기와 같이 어쩔 줄 모르고 다만 헤맬 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이었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정신이 타락 경(墮落境)에 떨어져서 그의 모든 아까운 재주와 지혜는 간지(奸智)와 몹쓸 수단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었다. ○의 아내?그런 변변치 않은 여편네 하나는 죽든 살든 아무 관계없으되,아까운 재조를 품은 ○뿐은 결코 타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어쩌나?” 나는 담뱃내를 내어 뿜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생각하려고 들어붙었던 나는 담배를 겨우 여섯 꼬치 피 운 뒤에 벌써 해결의 초보는 얻었다.우리 친구 가운데 호떡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람이 모레 동래온전(東來溫 情)으로 좀 가 있겠단 말을 어제 들은 것이 생각나므로,나는 ○를 그에게 위탁하여 같이 가서 얼마 동안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 하였다.그리고 그 동안에 나는 어떻게 하여든지 그의 아내의 몸 위에 생긴 모든 의심을 해결 하여 보려 하였다.그렇게 생각하고 곧 호떡을 찾아가서 말하여 보매, 그는 쾌히 ○를 맡겠다 하였다.그러나 놀란 것은 호떡도 ○의 아내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점이었 었다.그래서 나는 곧 물어 보았다. “자네 봤나?” “무얼?” “대저, 어떤 점이 수상한가?” “나두 보진 못했어. A씨에게 들었지.” 어제는 ○에게 오늘은 호떡에게 A씨라는 이름을 들었지만 나는 아직 A씨가 누군인지는 몰랐다. “그 A라는 사람이 누구야?” “A씨를 몰라?” “사내 ─ ㄴ가, 여편네 ─ ㄴ가?” “○군의 와이프 육촌오빠야. 오빠가 누이에게 무근지설로 훼방은 안할 테 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머리는 번개같이 빨리 움직였다. 나는 문득 고함 쳤다. “알겠네,그럼 호떡.” “그만두게, 호떡이 뭐야.” “○(그의 본 이름도 ○이었었다), 알았네.그 와이프가 처녀 적에 A씨가 러브를 던져 본 일이 있는데 그때 거절했단 말을 ○의 와이프에게서 들은 일이 있네.그러니깐 훼방일세.” 호떡은 반신반의의 얼굴로 나를 보았다.그러나 나의 얼굴이 참말 같으므 로 그는 머리를 끄덕이고 말았다.그렇지만 그 말은 나의 지어 낸 말에 지나지 못하였다.온전한 증거가 나 타나기 전까지는 나는 모든 일을 덮어두려 하였다.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를 부탁한 뒤에 그 집을 나섰다.그리고 그 뒤는 부러 여러 벗들을 찾아 다니면서 방패막이를 하여 두었다. ─ 자네 A라는 사람 아나?○의 와이프의 육촌오라비 말이네. 고약한 사 람이야.육촌누이에게 러브를 하다가 소박맞고 그 뒤는 만날 누이 험구에 분주하다네……. 대개 이런 말로써 혀끝을 놀려서 그들을 등떠 보았지만,놀랄 일은 그들 모두가 A씨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것이었었다.그런지라 마지막에는 내가 지어 낸 말을 나 스스로가 믿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그들도 얼마간 나를 신 용하던 터이라,나의 말을 절반은 곧이들었다. 이리하여 우리 친구들 가운데서는 ○의 아내에 대한 의심이 얼마간 덜어졌 다.
4 호떡이 여행 떠나겠다는 날 아침에, 나는 화가 ○를 찾아가서 그를 끄을고 나의 여관으로 왔다.그리고(아직 아침밥을 못 먹은) 그를 설렁탕을 한 그 릇 먹인 뒤에 나의 조그만 손가방 속에 간단한 여행 용구를 넣어 가지고 정 거장으로 나왔다. 호떡은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야 아무 영문도 모르고 눈이 휑하니 끌려 나온 ○는 잠깐 두리번두리 번 하다가(오늘 아침 철로는 처음의) 이야기 비슷한 말을 하였다. “어디 여행 떠납니까?” “내가 가는 게 아니라 자네가 가네.” 나는 가장 천연한 태도로 ○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엿보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는 이상한 듯이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가, “어딜요?” 하고 근심스러이 물었다. “동래온정이네.호떡 군이 좀 가 있겠다기에 자네도 같이 며칠 가 있으라 고 오늘 데리고 나온 길이네. 가지?” 나는 거반 명령적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그는 잠깐 머리를 수그렸다가 대 답 없이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가서 교자에 앉아 버렸다.내가 가령 언제쯤 ○를 찾아가서 내일 여행을 떠나라고 하였대면,그는 무론 이러니저러니 하 며 가지 않을 성격의 사람이었었다.이러한 그의 심리를 유리와 같이 꿰어 들여다보는 나는 오늘 아침과 같은 고압적 태도로써 그를 여행을 떠나게 하 려 한 것이었다.나는 차표를 사서 교자에 걸터앉아 있는 ○를 주고 그의 곁에 걸터앉아서,이제 그가 떠나 있는 동안에 모든 시끄러운 문제를 다 바로잡아 줄 것이니 마음놓고 가 있으라고 여러 가지로 위로를 한 뒤에,개찰구에서 표 찍기를 기다리고 있는 호떡을 찾아가서 ○를 지배하는 수완이며 방법을 똑똑히 일 러 주고,그들이 차 타는 것은 보지 않고 돌아와 버렸다.그것은 ○가 가기 싫다는 의사를 내게 나타내기 전에 그를 피하려 함이었었다…….
5
원래 나는 아무런 일이든지 낙관을 하는 사람이었었다. 어떤 대단한 시끄러운 문제가 생겨서,이것 야단이로다 하고 비관을 하고 있노라면 며칠 뒤에는 저절로 그 사건이 바로 펴여서 추호도 시끄러운 문제 가 아니고 한 경험만 가지고 있고,소위 ‘절체절명(絶體絶命)’이란 경우 를 당하여 보지 못한 나는 아무런 일을 만날지라도 다만 어물어물 하여버린 다.그러면(내 경험으로는) 얼마 뒤에는 문제가 정로(正路)로 들어서고 하 였다.어디 물어주어야 할 빚이 있는데, 손에 돈이 한푼 없다 야단이다 하 고 걱정하노라면 어떤(주머니 속에 돈 넣은) 친구가 찾아오고,오늘은 꼭 ×씨를 만나 보아야 할 텐데 비가 와서 야단이다 하고 있노라면,그 ×씨가 찾아오고…… 과연 근 삼십 년의 나의 생활사는 다시 말하자면 광의(廣義) 의 성공사(成功史)에 다름없었다.보나파르트가 ‘세상의 옥편 가운데서 〈할 수 없다〉라는 글자를 없이하여 버려라’고 선언한 것을 유명하게 말 하지만,나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그만한 선언은 할 수가 있다.그런지라 내가 ○를 동래온정에 보낸 것은 특별한 깊은 계획 아래서가 아 니다.다만 쓰라린 마음으로써 만날 괴롭게 날을 보내는 ○를 한가스러운 온정에 보내어 두면 절로(라면 좀 말이 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밖에는 말 할 수가 없다) 사건의 모든 비밀이 내게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의 심은 한낱 ○의 꿈에 지나지 못하고 그런 일은 당초에 없는지도 알 수 없 다, 이러한 박약한 개념의 아래서다. 그러나 막상 ○를 떠나보낸 뒤에는 나의 마음속에 책임관념이 일어나는 것 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알아보아야지.’ 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이런 것이었었다. 그러나 어찌할까?형사와 같이 변장을 하고 ○의 아내의 뒤를 밟아다닐 수 도 없는 일이요,그렇다고 ○의 아내에게 직접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아니 첩경이 있기는 있다.A씨를 찾아가서 똑똑히 물어 보면 혹은 어떤 단 서를 얻을지는 모른다.그러나 나는 왜 그런지 아직 보지도 못한 A씨라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싫어서 만나 볼 생각이 없었다.아무리 싫어도 ○를 위함이라 꾹 참고 A씨를 찾아보나?나는 몇 번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지만 한번 A씨를 찾아가기보다는 나는 오히려 십 년 동안을 절간에 들어가서 중이 되는 것을 고맙게 알겠다. ‘대체 어쩌면 좋은가?’ 나는 캠퍼를 한 덩어리 집어삼키면서 생각하였다
6
마침내 나는 하는 수 없이 형사와 같은 노릇을 하기로 결심하였다.그리고 이튿날 점심을 먹은 뒤에 ○의 집 근처까지 가서 ○의 집에서 전차 길까지 나오는 길에 있는(내가 아는) 어떤 잡화점에 들어갔다.나는 그 집에서 ○ 의 아내의 나오는 것을 보려 함이었었다.몸집이 조그만 잡화점 주인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씨한테 가십니까?” “아니, 저 잉크 한 병 사려구…….” “잉클 사시랴 예까지 오세요?” 하면서 그는 일어서서 잉크를 한 병 가져왔다. “자, 워터 ─ 맨.” 나는 주머니 속에서 돈을 꺼내어 준 뒤에 그의 회계상 앞에 걸터앉아서 가 끔 길가는 사람들을 주의하면서 흥정이 어떠냐,날이 꽤 추워졌거니, 이런 이야기로 한 반 시간 동안을 보냈다.그러나 이야기의 가옴이 다 끝난 뒤에 는 나는 곤란한 경우에 빠졌다.이제 여관으로 돌아가기도 싱겁고 핑계 없 이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나는 그에게 장기를 둘 줄 아느냐고 물었다. “장기 말씀이에요?잘은 못 둡지요만 본시 좋아는 합니다.” “그럼 한 판 놓아 볼까요?” “네 저 ─ 여보게 △△, 저 댁에 가서 장기판 좀 얻어 오게.” 우리들 앞에 장기판은 놓였다.나는 길로 향한 편에 자리를 잡고 장기 쪽 을 벌여 놓은 뒤에 때때로 길 가는 사람을 주의하면서 승부를 시작하였다.그러나 처음 한참은 길을 주의하면서 두었지만 장군 멍군 ‘차(車)’가 떨 어지고 ‘포(包)’가 위태하게 도리 때에는 길이고 ○이고,모두 내 머리에 서 사라지고 말았다.친구딴의 생명보다는 장기판 위에서 뛰노는 조그만 ‘병(兵)’의 생명이 내게는 더 큰 문제로 변하였다.우리의 모든 작고 큰 문제는 모두 장기판 밑에 들어가 숨어 버리고 내 머리는 다만 어쩌면 저 얄 밉고 성가신 ‘차’와 ‘마(馬)’를 죽여 버리노 하는 생각만 북 끓게 되었 다. 결국의 승리는 내 것이 되었다. 그러나 몇 번을 이기는 긴장된 너덧 시간 동안에 나의 품고 온 목적은 헛데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리하여 전등불이 어둑신한 마가을의 거리를 장식하게 될 때야, 나는 펄떡 정신을 차리고 한 번 싱겁게 씩 웃은 뒤에 내일 또 오마 하고 나의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열 시쯤 거기를 가서 곧 장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첫 켸를 시작하여 거궁(居宮)이 겨우 끝났을 때에 문득 밖을 보매 ○의 아내가 성장 을 하고 오페라 빽을 두르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갔다. 나는 한순간 뜻하지 않고 일어섰으나 다시 태연히 주저앉아서 모른 체하고 그 판 을 어름어름 허투로 끝을 내어 버렸다. 그런 뒤에 시계를 한번 꺼내어 보고 어디 급한 일이 있다고 한 뒤에 그 집을 나섰다. 무론 이제부터 ○의 아내를 따라가려던 작전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가 나간 뒤에까지 그 집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러니깐 오늘도 할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를 속이는 듯한 마음 상으로 생각한 뒤에 한번 씩 웃고 전 차길로 나와 버렸다. 며칠 동안을 그와 비슷비슷한 일 때문에 ○의 아내를 보면서도 그냥 넘겼 다. 그러나 그동안에 깨달은 것은 ○의 아내는 매일 아침 열한 시쯤은 어디 로 간다 하는 점이었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은 거의 열한 시가 되어서 그 잡화점을 찾아가서 부리나 케 장기를 시작하자는 주인에게 오늘은 긴한 일이 있어서 장기를 못두겠다 고 말하여 둔 뒤에 바깥을 내어다보면서 잡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나는 앞을 지나가는 ○의 아내의 가벼운 걸 음을 보았다. 나는 그가 두세 집쯤 더 지나갔을 때를 짐작하여 곧 시계를 꺼내어 본 뒤에 그 집을 작별하고 나서서 그의 뒤를 밟았다. 그는 전차길까지 나가서는 전차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에 섰다. 그것을 바라 보면서 나는 어떤 담배집에 들어가서 담배를 한 갑 사서 천천히 성냥을 그 어서 붙여 가지고 역시 천천히 정류장을 향하여 걸었다. 이때에 전차가 한 대 와 닿으며 ○의 아내는 파라솔을 접고 전차를 타버렸 다. 나는 문득 담배를 떨어뜨리고 얼빠진 것같이 ○의 아내를 태워 가지고 달 아나는 전차를 바라보았다. 이제라도 무론 뛰어가서 그 전차를 잡아타려면 못 탈 바는 아니다. 그러나 탐정소설에 나오는 탐정과 같이 변장을 못한 나는 ○의 아내 모르게 같은 전차 안에 함께 탈 수는 없는 바이었다. 그렇다고 이 모양대로 그를 미행한 다는 것은 마치 그에게, ‘나는 그대를 미행합니다.’ 하고 통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또한 할 수 없는 바이었었다. 나는 다만 저편으로 달아나는 전차를 원망스러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탐정 노릇도 못해 먹을 게다.” 나는 마침내 억지의 웃음을 웃고 돌아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