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정신병원장
생각하면 재작년 겨울 일이다. 나는 오래간만에야 고향에 돌아갔었다. 십 여 호가 넘던 일갓집들이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포플러 잎보담도 더 하잘것 없이 흩어진 오늘날에야 말이 고향이지 기실 쓸쓸한 타향일 따름이다.비록 초가일망정 이십여 간이나 되는 우리 집도 다섯간 오막살이로 찌그러 들어 성밖 외따른 동리에 초라하게 남았고 거기는 칠순에 가까운 아버지와 사십 이 넘은 계모가 턱을 고이고 앉았을 뿐.아들도 남부럽지 않게 많지마는 제 입 풀칠하기에 바쁜 그들은 부모님 봉양할 이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몇 달 만에야 한 번,몇 해 만에야 한 번 집안으로 기어드는 자식은 자식이 아 니요 손님이었다.쌀밥 한 그릇 고기국 한 대접을 만들어 먹이기에 아버지 와 어머니가 얼마나 고심하는 것을 잘 아는 나는 얼른 데미다보고는 선선히 일어서는 것이 항례였다.그러나 내가 여기서 내 신세와 우리 집안 형편을 늘어놓자는 것은 아니다. 음산하고 참담한 내 동무 하나의 이야기를 기념 삼아 적어 두자는 것이다.아버지 집을 총총히 뛰어나온 나의 발길은 몇 아니 되는 친구가 구락부삼 아 모이는 L 군의 사랑으로 향하였다. 그들은 무조건으로 나를 환영해 주었 다. 반가움,즐거움은 이야기의 즐거움으로 옮겨갔다. 서울 형편 이야기, 글 이야기, 생각 이야기를 비롯하여 친구들의 가정에 일어난 에피소드까지 우 리의 화제에 올랐다. “W 군이 어째 보이지 않나?요새도 은행에 잘 다니나?” 나는 그 사랑의 단골축의 하나인 W 군의 소식을 물어 보았다. “이번 정리 통에 그나마 미역국을 먹었네.” 하고 주인 되는 L 군이 얼굴을 찌푸린다.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래었다. 이 W 군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헐길 할길 없는 형편이었다.본디 서발 막대 거 칠 것 없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그는 열 여덟 살에 백부에게로 출계를 하 게 되었다.양자 간 덕택으로 즉시 장가는 들 수 있었으나 사람 좋은 양부 는 남의 빚봉수로 말미암아 씩씩지 않은 시골 살림이 일조에 판들고 말았 다.그는 처가에 몸을 의탁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처가 또한 넉 넉지 못한 형세이다. 조반석죽도 궐할 때가 많았다. 넉넉한 처가살이도 하 기 어렵다 하거든 하물며 가난한 처가살이랴?목으로 넘어가는 밥 한 알 두 알이 바늘과 같이 그의 창자를 찔렀으리라. 이대도록 고생에 부대끼면서도 그는 얼굴 한번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그 는 언제든지 싱글싱글 웃었다.그는 말 한 마디를 해도 웃지 않고는 못하는 낙천가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고학을 할 때 살을 에어내는 듯한 겨울날 속옷을 빨다가 손이 몹시 시리면 그는 벌떡 일어나 손을 쩔레쩔레 흔들며, “이놈의 손가락이 별안간에 왜 뻣뻣해지나?” 하고도 웃었다. 밥을 짓다가 연기가 눈으로 들어가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을 비비면서도 그는 히히 하고 웃기를 잊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몸은 여 지없이 말라 갔다.뼈하고 가죽으로만 접한 듯한 얼굴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점 날 것 같지 않았다. 가장 기쁜 듯이 웃을 때면 입가는 마치 누비를 누벼 놓은 듯이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었다.만사를 웃고 지내는 그이언만 처가살이는 견디지 못하였던지 작년 봄에 남의 협호(夾戶)를 얻어 자기 식구를 끌고 나왔다.백판으로 살림을 차리고 보니 그 궁색한 것이야 당자 아닌 남으론 상상도 못할 것이 있었으리라.있 는 친구에게 쌀되를 뀌어가면서 그날 그날을 보내던 중 여러 가지로 주선한 끝에 T은행의 고원으로 채용이 되었었다.이십오 원이란 월급이 비록 적지 마는 그들의 가정에겐 생명의 줄이었다. 그런데 그 줄이나마 끊어졌으니 그 는 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더구나 그는 벌써 열두 살 먹은 맏딸,여 덟 살 되는 둘째 딸, 네 살 먹은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냐. “그러면 무엇을 먹고산단 말인가?” 나는 탄식하였다. “요새는 사립정신병원장이 되셨지요.” 하고 익살 잘 부리는 S 군이 낄낄 웃었다. 왼 방은 이 말에 땍때그르르 웃 었다. “사립정신병원장이라니?” 나는 웬 까닭을 몰라서 채쳐 물었다. “출근 오전 칠시, 퇴근 오후 육 시, 집무 중 면회 절대 사절, 일시라도 환 자의 곁을 떠나지 못할지니 변소 출입도 엄금…….” 하고 S 군이 복바치는 웃음을 못 참을 제 방안의 웃음소리는 또 한번 높아 졌다. S 군의 설명을 들으면 W 군에게 P란 친구가 있었다.워낙 체질이 나약한 그는 어릴 적부터 병으로 자랐었다. 성한 날이라고는 단지 하로가 없었다. 가난한 집 자식 같으면 땅김을 벌써 맡았으련마는,다행히 수천석꾼의 외동 아들로 태어난 덕에 삼과 녹용의 힘이 그의 끊어지려는 목숨을 간신히 부지 해왔었다.자식이 그렇게 허약하거든 장가나 들이지 않았으면 좋을걸 재작 년에 혼인을 한 뒤부터 그의 병세는 더욱 더쳐진 모양이었다.금년 봄에 첫 딸을 낳은 뒤론 그는 실성실성 정신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미치고 보니 자연히 찾아오는 친구도 없고 부모친척까지 그와 오래 앉아있 기를 꺼리게 되었다.그렇다고 병자를 내어 보낼 수도 없고 혼자 한 방에 감금해 두는 것도 또 한 염려스러운 일이라 그 때 W 군이 ‘사립정신병원장’이 된 것이다.날이 마치도록 미친 이의 말벗이 되고 보호병 노릇을 하는 보수로 W 군은 한 달 에 쌀 한가마니 돈 십 원씩을 받게 된 것이다. ‘사립정신병원장!’ 나는 속으로 한번 외워 보았다. 나의 가슴은 한 그믐밤 빛같이 캄캄해졌다.
그 날 저녁에는 W 군을 만났다. “원장 영감, 인제야 퇴근하셨습니까?” 하고 S 군은 또 낄낄댄다. 방안에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W 군은 또한 빙그레 웃었으되 그 샛노란 얼굴엔 잠깐 검은 그림자가 지내 가는 듯하였다. “오늘은 별일 없었나?” 친구들은 W 군을 중심으로 둘러앉으며 L군이 물었다. 그들의 눈에는 호기 심이 번쩍이었다. “여보게 말도 말게. 오늘은 정말 혼이 났네.” 하고 W 군은 역시 싱글싱글 웃는다. “왜?” 여러 사람의 눈은 호동그래졌다. “지랄이 점점 늘어가나 보데. 오늘은 문을 첩첩이 닫고 늘 하는 그 지랄을 하더니만 칼을 가지고 나를 찌르려고 덤비데.” “칼은 또 웬 칼인구?” “낮에 밤 까먹으라고 내온 것을 어느새 집어넣었던가 보데.” “그래 곧 그 칼을 빼앗았나?” “그까짓 것, 안 빼앗았으면 어떨라구?설마 미친놈이 사람 죽이겠나?” 하 고 W 군은 또 웃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웬일인지 치운 듯이 떨고 있었다. “자네도 좀 실성실성 하이그려. 미친놈이 사람을 죽이지, 성한 놈이 사람 을 죽이나?” 거기 모인 친구의 하나인 K 군이 그 귀공자다운 흰 얼굴이 조금 푸르러지 며 이런 말을 하였다.“성한 사람 같으면 푹 찔르지만 칼을 들고 남의 목에 겨누며 한참 지랄을 하더니 그대로 퍽 쓰러지데그려.” “자네 오늘 운수가 좋았네.문을 첩첩이 잠그고 그 어둠침침한 방안에서 정말 찔렀으면 어쩔 뻔했나.” 하고 L 군은 아질아질한 듯이 몸서리를 친다. “문을 왜 처잠그는가?” 나는 또 설명을 요구하였다. “자네는 참 모를 걸세.” 하고 W 군은 설명해 주었다. P의 증세는 소위 공인증(恐人症)이란 것이었 다.천연스럽게 앉아 있다가 문득 눈을 홉뜨고 그 백지장 같은 얼굴이 파랗 게 질려 가지고, “아이구, 저놈들이 또 온다.” “아이구, 저놈들이 나를 잡으려 온다.” 라고 황겁하게 중얼거리며 숨을 곳을 찾는 듯이 방안을 쩔쩔 매다가, “여보게 W 군, 문 좀 닫아 주게, 문 좀 닫아 주게.” 라고 비두발괄하는 법이었다.그러면 W 군은 하릴없이 사랑 중문을 닫고 그들 있는 방문이란 방문은 미닫이며 덧창이며 바깥문까지 모조리 다 걸어 야한다.그래서 방안이 침침해지면 개한테 쫓긴 닭 모양으로 방 한구석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미친 이는 고개를 번쩍 들고 사면을 두리번두리번 살핀 다. 그러다가 별안간, “히, 히, 히,히.” 라고 마디마디 끊어진 웃음을 웃는다. 이 웃음소리를 따라 그의 홉뜬 눈이 점 번들번들해지자, “이놈들아, 너희들이 나를 잡아가?어림 반푼어치 없지. 히, 히, 히.” 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 한 시간 가량 지내면 제풀에 지쳐서 그대 로 쓰러지는 법이었다.그런데 오늘도 법대로 또한 문을 다 잠그고 한참 발 광을 하다가 문득 품속에서 창칼을 쑥 빼어 들더니 W 군에게 달려들어 그 칼을 목에다 겨누며, “이놈 죽일 놈, 네가 나 잡으러 온 것이지?이놈 내 칼에 죽어 봐라.” 하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다행히 그대로 쓰러졌다고 한다. “자네 오늘 십 년 감수는 했겠네.” 하고 L 군이 소리를 떨어뜨린다. “글세, 원장 노릇도 못해 먹겠는걸.” 하고 W 군은 또 히히 웃어 보이었다.
K 군의 주최로 그날 밤에 우리는 해동관이란 요릿집에 가게 되었다. 일행 이 거진 다 외투를 걸쳤건만 W 군 홀로 옥양목 겹두루막 자락을 찬바람에 날리며 가는 다리를 꼬는 듯이 하여 걸어가는 양이 눈물겨웠다.요리상은 벌어졌다. 셋이나 부른 기생의 기름내와 분내가 신선로 김과 한 데 서리었다.장고 소리와 가야금 가락이 서로 어우러지자 한가한 고로 웅 장한 단가며 멋질리고 구슬픈 육자배기가 단 입김과 함께 둥둥 떠돌았다.술은 여러 차례 돌았건만 나는 조금도 취해지지를 않았다. W군의 존재가 어쩐지 나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 첫째로 그의 주량이 나를 놀래게 하였 다.서울에서 고학하던 시절 학비를 넉넉히 갖다 쓰는 친구가 청요리 집으 로 가난한 놀이를 하려면 강권하는 것을 떨치다 못하여 배갈 한 잔에 누른 얼굴이 홍당무로 변하며 그대로 쓰러지던 그였다.그런데 오늘 저녁엔 비록 정종일망정 열 잔이 넘었으되 조금도 취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빼빼 마른 팔뚝을 반만 걷어 요리상 위에 세운 채 기생이 따라 주는 대로 그는 꿀꺽꿀꺽 들이켜고 있었다. “자네 웬 술을 그렇게 먹나?” 마츰내 나는 W 군을 향해서 의아한 듯이 물었다. “왜 나는 술도 못 먹는 줄 알았나?” 하며 W 군은 또 히히 웃어 보였다. “여보게 W 군, 술이 어떤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나?한 동이를 지고는 못 가도 먹고는 간다네. 식전 해장도 세 사발은 먹어야 견디네.” S군 이 도리어 내 말을 의아하게 여기는 듯이 가로채더니만, “여보게 W 군,자네는 자네말짝으로 그 눈알만한 잔 가지고는 턱이 아니 될 터이니 곱부로 하게.” “그것도 좋지, 나만 그럴 것 있나. 우리 모두 곱보로 하세그려.” 곱보는 들어 왔다.처음에는 먹을 듯이 모두들 W 군의 말에 찬동을 하더 니만 곱보에 술을 붓고 보니 끔찍하던지 감히 마시려 들지 않았다. W 군 홀로 제 곱보를 기울이고 말았다.“자네들도 들게 그려.” 하고 한 두어 번 권해 보았으나 잘들 들지 않으매 저 혼자 연거푸 다섯 잔 을 들이킨다.그는 자기의 비색한 신수와 악착한 형편을 도모지 잊은 듯하 였다. 그와 반대로 모인 중에도 자기 혼자 유쾌하고 기쁜 듯하였다.기생 하나이 장고를 메고 일어서자 앞장서서 얼신덜신 춤을 춘 이도 W 군이었 다. 꽉 잠긴 목으로 남 먼저 ‘에라 만수’를 찾은 이도 W 군이었다. 놀이는 끝장날 때가 왔다.꽹과리 소리가 사람의 귀를 찢었다. 춤추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하나씩 둘씩 늘게 되었다. “인제 구만 가세그려.” 술이 덜 취한 L 군이 마츰내 이런 제의를 하였다.우리는 그 말에 찬동을 하며 외투를 떼어 입었다. 그 때에도 한 팔로 요리상을 짚고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아즉 술병을 기 울이고 있던 W 군은 문득 뽀이를 불러서 신문지를 가져오라 하였다.신문 지를 받아들자 그는 약식이며 떡 같은 것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하였다. “여보게 창피하네. 구만두게.” K 군이 눈썹을 찡기며 말리었다. “어떤가, 내 돈 준 것 내 가져가는데!” 하고 W 군은 역시 웃으며 벌벌 떠는 손으로 쌀 것을 줍기에 바쁘다. “인제 구만 싸게, 에이 창피스러워.” 하며 K 군은 고개를 돌린다.마츰내 W 군은 쌀 것을 다 싸 가지고 송편과 약식이 삐죽삐죽 나오는 봉지를 들고 비슬비슬 일어선다.그 때 K 군의 나지미(단골)라는 명옥이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그 광경을 바 라보다가, “원장 영감 댁은 오늘밤에 큰 잔치를 하겠구먼.” 하고 비웃적거리었다.그 말이 떨어지자말자 W 군은 나는 듯이 명옥에게로 달겨들었다. “이년, 뭐이 어째!” 라는 고함과 함께 W 군의 손은 철썩 하고 명옥의 뺨에 올라붙었다. 명옥은 “애고고.” 외마디 소리를 치고 쓰러지매 W 군은 미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원장 댁 큰 잔치?큰 잔치?” 라고 뇌이면서 발길로 엎어진 계집의 허리를 찼다. 이 야단 통에 W군의 떡 싼 봉지는 방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나는 이 싸움의 원인이요,사랑의 뭉 치인 봉지를 얼른 주워서 방 한 구석 장고 얹혔던 자리 위에 올려 두었다. 싸움은 벌어졌다. K 군이 명옥의 역성을 들며, W 군에게 덤빈 까닭이다.K 군은 W 군의 목덜미를 잡아 회술레를 돌리다가, “이 자식이 미친놈하고 같이 있더니 미쳤나 뵈, 왜 사람을 차며 지랄발광 을 하노?” 하며 휙 뿌리치매 W 군은 비실비실 몇 걸음 걸어나오다가 방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팍 거꾸러졌다. 그럴 겨를도 없이 엎어진 이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곧 K 군에게로 달겨들었다.우리는 황망히 그의 팔을 잡아 만류를 하였는 데 그 때 그의 얼굴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몸서리가 끼친다. 엎어질 때 다 쳤음이리라. 앙다문 이빨엔 피가 흘렀다.그 겅성드뭇한 눈썹이 알알이 일 어섰으며 핏발 선 눈엔 그야말로 불이 나는 듯하였고 이마엔 마른 가죽을 뚫고 나올 듯이 푸른 힘줄이 섰다.그러나 그것보담도 마치 납을 끓여 부은 듯한 그 얼굴빛, 실룩실룩하는 살점 하나 하나이 떠는 듯한 그 꼴이란 더할 수 없이 무서웠다. 입에 거품을 버글버글 흘리고, “미친놈하고 같이 있으면 어쨌단 말이야?미쳤으면 어쨌단 말이냐?으 ─ 너는 돈 있다고, 너는 돈 있다고.” 하고 이를 빠드득빠드득 갈아 부치며 K 군을 향해 몸부림을 쳤다.순한 양 같은 이 낙천가가 비록 취중일망정 사나운 짐승같이 날뛰며 악마보담도 더 지독한 표정을 할 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하였으랴.간신히 뜯어말려서 먼저 K 군을 보내고 L 군과 S 군과 나는 이 W 군을 진정시켜서 얼마 만에야 그 요릿집 방문을 나오려 하였다.그 때 W 군은 무엇을 찾는 듯이 연해 방안을 살피다가 아까 내가 얹어둔 봉지를 발견하자 그의 눈은 이상하게 번쩍이었다.그의 뜻을 지레짐작한 나는 얼른 그 봉지 를 집으매 그는 내 손에서 그 봉지를 빼앗듯이 받아 가지고 방바닥에 태기 를 쳤다.그러자 그는 헤어진 음식 위에 거꾸러져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그의 얼굴과 손은 약식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복돌아!약식 안 먹어도 산다. 복돌아!송편 안 먹어도 산다.” 한동안 그는 제 아들 이름을 부르며 목을 놓고 울었다. 문득 울음을 뚝 그친 그는 무엇을 노리는 듯이 제 앞을 바라보더니만 나를 향하며, “여보게, 칼로 푹 찔러 죽이는 것이 어떻겠나?” 우리는 어리둥절하며 그의 입만 바라보았다. “아니, 그럴 일이 아니다. 고 어린 것을 칼로 찌를 거야 있나?차라리 목 을 눌러 죽이지. 목을 누르면 내 손아귀 밑에서 파득파득하겠지.” “여보게, 누구를 죽인단 말인가?” 마츰내 나는 물어 보았다. “우리 복돌이를 말일세. 하나씩 하나씩 죽이는 것보담 모두 비끄러 매 놓 고 불을 질러 버릴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전신에 소름이 끼치었다. “흥, 내 자식 죽이면 저희들은 성할 줄 알고?흥, 그놈들도 내 손에 좀 죽 어야 될걸.” 하고 별안간 그는 소리쳐 웃었다. S 군이 W 군과 바루 한 이웃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취한 이를 맡 기고 돌아왔었다.
그 이튿날 S 군의 말을 들은즉 W 군의 집에서 악머구리떼 같은 어른과 아이의 울음이 하도 요란하기에 자다가 말고 가 보니 W 군의 부인은 어떻 게 맞았던지 마루에 늘어진 채 갱신도 못하고,아이 새끼는 기둥 하나에 하 나씩 밧줄로 친친 매어 두었으며, W 군은 손에 성냥을 쥔 대로 마당에 쓰 러져 쿨쿨 코를 골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차로 나는 서울로 올라 왔다. W 군은 ‘사립정신병원’의 사무가 바빠 나를 전송도 해 주지 못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섯 달 가량 지냈 으리라. 나는 L 군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W 군이 마츰내 미치고 말았다. 그는 오늘 아츰에 P 군을 단도로 찔러 그 자리에 죽이고 말았네. P 군의 미친 칼에 죽을 뻔하던 그는 도리어 P 군을 죽이고 만 것일세…….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물론 놀래었으되 어쩐지 의례히 생길 참극이 마츰내 실연되고 만 것 같았다.
(『개벽』, 192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