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부터 흐려오던 일기는 밤에는 보슬비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외로운 산촌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봉선이와 나란히 하여 자리에 들어간 나 는 곤함에 못 이겨서 어느덧 잠이 들었습니다.그러나 웬일인지 깊이 잠들 지 못하였던 새벽 2시쯤 하여 문득 깨었습니다.깨면서 나는 보슬보슬 내리 붓는 빗소리에 섞여서 나는 젊은 여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펄떡 정신을 차리며 화순의 자리를 만져보니 거기는 빈 자리뿐이 남아 있었 습니다.가만히 발을 들고 내다보매 화순이는 토방에 놓인 쌀자루에 기대어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외딴 산촌의 빗소리에 섞여서 간간 그의 흑흑 흐 느끼는 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적적히 들립니다.나는 발소리 안 나게 나가서 그의 뒤로 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 다.그는 한순간 펄떡 놀랐지만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그러나 격렬히 떨리 는 그의 어깨는 그가 얼마나 힘 있게 울음을 참고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화순,들어가요.” 내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억제도 할 수 없는지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자,화순 들어가요.” “경애, 먼저 들어가요. 인제 들어갈게…….” “그러지 말구 자, 들어가요.” 나는 그를 옆에 끼다시피 하여 들어왔습니다. “화순,나도 신문에서 보고 다 짐작했어. 얼마나 분했겠소?그러나 잘 참 았어. 용하도록 참았어.” 이전 학교 시대에 200여 명 생도가 교장에게 꾸지람을 듣고 울 때에 혼자 서 눈이 말둥말둥 교장을 흘려보고 있던 그였습니다.“제삼자인 내가 보아도 분한 것을 잘 참았어. 그래도 그때 왜 변명을 안 했소?” “변명?그런 일을 꾸며낸 사람에게 변명을 하면 무얼 합니까?”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여하튼 대체 그때 일이 어떻게 되었소?나도 신문에서만 보고 그렇진 않으리라고는 짐작했지만 한번 자세히 화순의 입으 로 이야기해주어요.나는 지금 어떤 잡지사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문제를 일으켜서 그런 고약한 사람…….” “그만두어요. 세상이 다 잊으려 할 때 다시 그런 일을 떠들쳐 내면 무얼 합니까.한 달만 지나면 세상이 다 잊어버릴 일을…….” “그래도 분하지 않아요?” 잠깐 그치려던 그의 울음은 다시 폭발되었습니다. “자,그러지 말고 그 이야길 한번 자세히 해봐요.” 잠깐 침묵이 계속되었습니다.“아직 아버님께두 말씀 안 드렸지만 죽기 전에 언제든 할 말을…… 자, 경애, 들어봐요.” 그의 남편 P생(生) , 화순과의 결혼이 재혼이었습니다.전 마누라를 무식 하다는 핑계로 쫓아버리고 그 뒤에 얻은 화순인지라,처음에는 의가 썩 좋 았습니다. 신문지가 몇 번을 연거푸 부른‘세 겹 대문’안에도 향기가 있고 사랑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유전적으로 방탕함을 타고난 P는 한 1년 뒤에는 마침내 방탕한 놀 이를 시작하였습니다.그리하여 방탕에 재미를 본 P는 방탕을 시작한 지 반 년쯤 뒤에는 안방에는 얼씬을 안 하게까지 심하게 되었습니다.잠깐 안사랑 에서 점심을 먹고는 다시 뛰쳐나가서는 이튿날에야 또 들어와서 점심을 먹 고…… 이리하여 화순과는 대면 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그러나 화순은 아무 말도 안 하였습니다. “그 지아비에게 거역하지 마라.” 이러한 말을 몇 천 번이나 아버지에게 들은 그는 절대로 침묵하였습니다.“이것도 역시 처도(妻道)겠지…… 이렇게 마음먹고 억지로 화평한 낯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날 그의 시어머니가 그를 불러가지고 아들의 방탕을 좀 말리 라고 명하였습니다.그 말을 듣고 그날 밤 그는 밤새도록 생각하였습니다. ‘시기는 여인 최대의 죄악이라.’ 이러한 교훈을 아버지에게 받은 그로서는 남편의 방탕을 책할 용기가 없었 습니다. 그러나,‘시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마라.’ 한 아버지의 교훈도 또한 잊지 않은 바였습니다.그리하여 밤새도록 생각 한 결과 자기는‘시기 많은 여편네’로 보일지라도 시어머니의 말을 복종하 여 남편을 책하는 것이 M가의 며느리로서의(집안을 생각하고 시어머니의 명 령에 복종하는) 가장 적당한 일이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안방에는 들어오지 않으므로 만날 기회도 없는 P를 어떻게 만나 서 권고를 하였습니다. 그것을 힐끗 본 P는 그 달음으로 나가서 열흘 동안 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안 차인이며 남복여비(男僕女婢)가 모두 나서서 그를 어떤 기생집 아랫 목에서 찾아온 때는, 그는 갑자기 화순이와의 이혼 문제를 끄집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핑계는 시기 많은 여편네는 가풍에 맞지 않는다 하는 것이었습니 다. 그 이튿날 화순이는 시아버지에게 불려서 한 시간 이상을 시기라 하는 데 대한 강설을 들었습니다. 자기는 결코 시기로써 그런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의 명령으로 그랬노라고 대답을 하고는 싶었으나 이러한 일로 조금이라도 집안에 분규가 일어나면 그 책임자는 자기인지라, 그는 다만 이후에는 다시 그러지 않겠습니다고 사과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난 뒤부터 시어머니의 눈이 괴상히 빛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어머니도 차차 며느리를 적시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사람 믿고 온 남편과 집안 안의 모든 일을 다스릴 시어머니에게 밉게 보인 그는 그래도 모든 일을 모른 체하고 온순과 인종을 푯대 삼고 나 아갔습니다. 그저 참자. 이것이 처도이고 부도(婦道)이고 동시에 여도(女 道)겠지. 이러한 신념으로 그는 모든 일을 참았습니다. 트집 잡힐 일만 없 으면 그뿐이 아니냐, 이러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웃는 낯으로 지내왔습니 다. 이리하여 2년이라는 날짜가 지났습니다. 어떤 추운 겨울날, 삼월이라는 종과 둘이서 자고 있던 그는 문득 인기척에 펄떡 깼습니다. “누구야.” 이 한마디에 어떤 괴한이 윗목 문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는 곧 삼월을 깨 워가지고 나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일은 아무도 알 사람이 없었을 터인데 그날 저녁에 삼월이가 들어와서 하는 말에 의지하건대, 어젯밤의 일이 벌써 뭇 종년놈들에게 소문 이 퍼졌으며 그 말의 근원은 노마님인 듯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순은 모든 일을 다 직각하였습니다. 아무리 찾으려 하여도 화순에게서 트집을 찾아내지 못한 시어머니(혹은 남편)는 화순에게 누명을 씌워서 그것 을 트집 삼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괴한의 뛰쳐나가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지라 이 문제는 이삼일 뒤에는 삭아지고 말았습니다. 또 석 달은 지났습니다. 아직껏 4년 동안을 얼씬도 안 하던 그의 남편이 4년 만에 그의 방에 들어 왔습니다. 그날 밤 이상한 흥분으로 깊이 잠이 못 들던 그는 또 윗목의 사람기에 놀 라 깼습니다. 윗목에는 확실히 어떠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잠 깨기를 재촉 하는 듯이 헛기침을 컥컥 뱉었습니다. 화순은 몸을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무서운 트릭이었습니다. 먼젓번에는 확 증이 없기 때문에 실패에 돌아간 그들의 계획은 다시 중인 입회하에서 실행 된 셈이었습니다. 남편은 곤한 잠에서 깨는 듯이 눈을 떴습니다. 그 뒤의 일은 간단하외다. 어지러운 문제가 일어나고 그 결과로는 더러운 이름 아래 본가로 쫓겨가고…….
그 이튿날. “간간 편지해요.” 하는 말과 적적한 웃음으로 화순의 전송을 받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얼마 동안 사의 일로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느라고 화순의 일을 생각할 틈이 적었 습니다. 그리하여 반년이 지난 뒤에 뜻밖에 화순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깜 짝 놀라서 사에는 이삼 일 여행을 간다고 전화를 한 뒤에 기차로써 화순의 집에 달려갔습니다. 조선 가장 명문의 전형인 허연 수염과 싯누런 살빛과 곧은 콧날을 가진 화 순의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정신없이 뜰만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곁 에까지 간 때에야 처음으로 머리를 들었습니다. “선생이 박경애 씨요?” 그는 느릿느릿한 말소리로 묻습니다. “네.” “늦었소. 오늘 아침 장례를 지냈소.” “한데, 웬일이에요?참!”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안방에 들어가서 무슨 편지를 하나 내어다 내게 줍 니다.그것은 나에게의 화순의 편지였습니다. “그저께 밤이오. 나도 늙은 몸이라 잠이 늦은데,이즈음 맨날 잠을 못 들 어서 애들 쓰던 그 애네 방에서 그날 밤은 기침 소리 한마디 없지 않겠소?하 이상해서 건너가보았구려. 그 방엔 아무도 없어.그래서 성냥을 켜가지 고 보니깐 편지 두 장이 있습니다. 한 장은 내게 한 게고 한 장은 선생께, 그……. 편지를 보니깐 중이 되려 떠나노라고 그랬겠지요. 나도 늙은 몸이 외롭긴 외롭소.그러나 젊은 청춘에 맨날 잠도 못 자고 밤중에 간간 소리를 내어서까지 울던 그 애 처지를 생각하면,이제 몇 해를 더 못 살 나는 외롭 든 어떻든 중이라도 되어서 자기 마음이라도 편안해지면 오죽 다행이 아니 오?그래서 내버려두었구려. 그랬더니 이튿날 아침, 촌사람들이 그 애 시체 를 앞 개울에서 건져 왔소.” 이것이 외로운 노인의 한숨과 같이 하소연한 화순의 최후였습니다. “선생, 선생은 부모가 다 생존해 계시우?” “불행히 일찍 여의었습니다.” “불행히?” 그는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지었습니다.“선생께는 불행일지 모르나 다 늙은 뒤에 자식을 잃는다는 것도…….” 그날 밤 나는 화순의 이전 거처하던 건넌방에서 묵었습니다.밤이 깊어서 잠깐 깨어 뜰에 사람의 걷는 소리가 나기에 내다보니 달빛이 밝에 비추는 가운데 서리 맞아서 시들어진 화단을 두고 노인은 뒷짐을 지고 거닐고 있었습니다. 달빛 때문에 은빛으로 빛나는 수염을 가을바람에 휘날 리면서……. 새벽에 다시 깨어보니 그는 그냥 거기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기침 소리가 간간 들립니다.
이튿날 저녁 서울로 돌아올 때에 그는 전송으로 10리나 따라 나왔습니다. “들어가세요.” 하면,그는, “무얼, 집에 돌아가야 일도 없는 사람이오.” 하면서 그냥 따라왔습니다.그러나 나는 그 말의 반면에‘집에 돌아가야 기다릴 봉선이도 인젠 없소’라는 것같이 들려서 처량하기가 짝이 없었습니 다.긴 언덕 하나를 올라와서 그 마루에서야 그는 떨어졌습니다. “안녕히가시오.” “그럼,인젠 돌아가십시오.” 이러한 인사로 작별하고 나는 그 긴 언덕을 다 내려와서 돌아다보았습니 다.그는 그냥 그 언덕마루에 서서 이마에 손을 대고 한없이 서편 쪽을 바 라보고 있었습니다.한참 더 오다 돌아보매 그냥 붉어가는 서편 하늘에 그의 그림자가 조그맣 게 보입니다.그가 이마에 손을 대고 돌아보는 쪽에는 그의 가장 사랑하던 딸이 묻혀 있는 묘지가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서 여전히 잡지사의 일을 보던 나는 그해도 다 가고 새해가 된 정월 그믐께 뜻밖의 사람의 방문을 받았습니다.그것은 화순의 아버지 최 판서였습니다. 그는 들어와 앉아서도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이리 한 10분 동안이나 아무 말도 없이 앉았던 그는 머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떠나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만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떠나오. ” “어디로 말씀이외까?” “봉선이가 되려다 못 된 중을 내가 되려구 떠나오.” 그 뒤에는 또 침묵. 전등이 켜졌습니다.동시에 그는 얼른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었습니다. “참, 늙으면 할 수가 없어.조금만 추워도 눈물이 나구. 허허허허.” 그는 적적히 웃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엉뚱한 거짓말이었습니다.몹시 추위를 타는 나는 방을 여간 덥게 안 하매 추워서 눈물이 난다는 것은 거짓 말로서 그의 눈물은 딴 의미의 눈물일 것이었습니다.좀 있다가 그는 일어서며, “인연 있으면 다시 만납시다.” 하고는 초연히 가버렸습니다.그때부터 반 10년, 그의 소식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뒤에서 오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는 혁명당의 괴수가 되어 있단 말이 있 습니다.지금 세상에서 떠드는 ○○단의 수령이 그이라 합니다.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면 구월산에서 최 판서와 흡사한 중을 보았다 합니 다.그러나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외다. 나는 이러한 소문을 들을 때마다,‘늙으면 할 수가 없어. 허허허허.’ 하면서 눈물을 씻던 그를 생각합니다.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눈에서도 또 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그는 과연 살아 있나. 살아 있어서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중이 되었나.혹은 만주의 넓은 혁명당의 수령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나. ‘인연 있으면 다시 만납니사.’ 하던 그의 마지막 말은 쟁쟁히 내 귀에 남아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