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나 나가 볼까?” “네.” 그는 눈을 내리뜬 대로 대답한다. “뭐, 추운데 그만둘까?” “네.” “갑갑하니 무엇이나 하자나?” “…….” “응?” “네?그저 형님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란?자네 말하게.” “그럼(하면서 그는 눈을 휘둘러본다) 저기 저 트람프라도…….” 이전의 그는 결코 이러한 순종 잘하는 청년이 아니었었다.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동시에 A씨와 ○ 의 아내에게 어떻게든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결심은 나날이 굳어 갔다.그러나 옛적과 같이 일문(一門)이 몽치를 들고 나서서 두 연놈을 쳐죽일 수도 없는 바이며,그들의 간통의 증거를 잡아서 검사국에 고소를 하자니 그것도 또한 ○의 명예를 위하여 못할 일이 아닌가.아니 원수는 그만두고라도 ○를 이전과 같은 어린애로 다시 만들 수가 있 다 하면, 그것뿐이라도 하여야겠다……. 나는 ○의 상심한 여윈 얼굴을 들 여다보면서,언제든 그 뒤에서 비웃는 A씨와 ○의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 . ‘○, 기다리게. 하나님은 옳은 자를 구원한다네.설혹 하나님이 못 구원 한다 할지라도 이 ○○는 꼭 구원해 줄께. 마음놓고 기다리게.다만 시기 네. 시기야. 엑, 짐승들.’
25
해는 바뀌었다. 새로운 해를 맞은 이 도회는 잠깐 기쁨으로 욱 끓었다.그러나 ○의 상심 한 얼굴에서는 조금의 빛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어떤 날 아침,○는 나를 찾아와서 머뭇거리다가 이런 말을 물었다. “형님, 바로 말씀해 주세요. 우리 처가 어떻습니까?”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담배를 주었다. 그런 뒤에 대답 하였다. “왜?” “이런 생활을 이제 석 달만 더 하래면 죽는 편이 낫겠세요.” “자네,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나?” 그는 잠잠하였다. 그러나 잠시 지나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밤 A씨가 왔는데 잔뜩 술에 취해서, 날 들여다보면서 씩씩 웃고 있 어요. 형님 왜 웃었을까요?A씨는 무얼 아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 나는 나의 눈물 나오는 얼굴을 그에게서 돌리면서 별한 소리로 웃었다. “○!나는 아직껏 자네의 부인의 품행이 온전한 줄 믿네. 내가 모르는 걸 A씨가 어찌 알아. 나만 믿게.나는 사내네. A씨보다 영리하고 지혜 있고 지 식 있는 사람이네. 나만 믿게.” “그래도…….” “그래도 뭐야. 날 못 믿겠단 말인가?” 그는 다시 머리를 수그리고 말았다.
26
정월도 지나갔다. 나의 ○에게 맡은 책임은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한 걸음도 진척 못 되었 다.나는 ○를 다시 온양온정으로 보내었다.비통한 ○의 얼굴을 만날 눈앞에 보는 것은 사실 나로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었다.(있으나 없으나 일반이겠지만, 그래도 조금 구속되던) ○가 온양으로 떠난 뒤에 ○의 아내의 행동은 더욱 못되게 되었다.A씨의 행랑아범의 말에 의지 하면, 이쁜 아찌 한 분이 A씨의 집에 묵어 가면서 즐겁게 논다한다.○의 집을 찾아가면 언제든 행랑할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들 놀아 두어라, 짐승들. 그러나 너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점은 사람이 짐승보다 지혜가 더 있다는 점이다.마지막 승리자는 사람일 밖에는 없다는 점이다 ─ 나는 침을 탁 배앝으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하였다.
27
이월도 절반이나 간 어떤 날, 나는 책방 보는 T군을 찾아갔다가,거기서 우연히 A씨가 티푸스에 걸려서 위독하게 되어서 입원하여 있단 말을 들었 다.‘이것이 시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머리를 지나간 생각은 이런 것이었었다.조금이라도 그들(A씨와 ○의 아내)의 생활 상태의 변동이 생기기만 하면 그것을 기회로 아직껏 그 자리에 있던 나의 책임을 다하려 하던 나는,우연 히 이른 이 기회를 그저 넘기지 않으려 하였다.나는 곧 B의원에 전화로 A씨의 모양을 물어 보았다. 그리고 ‘힘 써는 보 겠지만……’ 이라는 대답을 얻은 나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한잠을 이루 지 못하였다.무론 A씨나 ○의 아내나 같은 사람인지라 이 기회를 그저 넘긴다 할지라 도,언제 다시 새로운 기회가 이르겠지만 차차 타락경으로 빠져들어가는 ○ 를 생각하면 한 기회를 업수이 여길 수가 없었다.하룻밤을 담배 여섯 갑으로 새우면서 나는 이제 연출될 일장의 비극을 복 안하여 놓았다.그리고 이튿날 아침 온양 ○에게 곧 서울로 돌아오라는 전 보를 놓았다. 이튿날 ○가 돌아왔다.나는 ○의 아내에게 ○가 오늘 온양서 돌아온다는 기별을 한 뒤에 정거장에 나가서 ○를 맞아서 곧 어떤 카페로 데리고 갔다.
28
술이 어지간히 취한 뒤에, 나는 ○의 어깨를 흔들었다. “○,내가 왜 갑자기 자네를 전보로 데려왔는지 알겠나?” 그는 힐긋 나를 보았다. “알잖고요. 우리 처의 못된 짓을 발견하셌지요?” “○, 흥분하지 말게. 아직 똑똑히는 모르지만, 좀 아야시이(ァヤシイ─수 상한)한 점이 뵈데.자세히 듣게. 아직은 똑똑히는 모른단 말이야.” 그는 또 다시 힐긋 나를 보았다.그런 뒤에 다시 술을 잔에 부었다. “○, 꼭 내 말을 듣고, 내 명령을 복종하겠나?흥분하지 않고 꼭 내가 말 한 대로 실행할 수 있나?있으면 맹서하게.” “…….”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 가서 부인을 만나 보게!” “예?” 그는 소리까지 내며 놀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낭패한 빛이 떠돌았다. “못하겠나?” “그깻년을 만나서 무얼 합니까?” 그는 벽력같이 고함쳤다. “흥분치 말래도 그냥 흥분하나?” 나는 그에게, 그가 이제 아내를 찾아가서 하여야 할 일을 천만 어로써 일 러 주었다 ─ 이제 아내를 찾아가서 잡담 제지하고 첫말로,모든 일은 다 증거가 나타났으니 자백하여 버리란 말과 공연히 여러 소리를 하든지 흥분 을 하든지 하면 모든(실행하려던)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테니까, 정신 차려서 흥분치 않도록 힘쓰라는 말을 열 번 스무 번 거푸 일러 주었다. “자네에게, 다른 일은 시키지 않으마. 그 대신 그 일 하나는 책임 맡아 가지고 해야 하네. 자, 용기를 내어 가지고 해보게. 자네의 일을 펴기 위해 서 자네의 몫에 가는 야쿠와리(역할 ─ やくわり)는 자네가 책임 맡아 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 못하겠나?” 나는 잠깐 기다리다가 물었다. 그에게서는 역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그 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똑똑히 말을 해!하겠나 못하겠나?” 즉, 그는 이번은 내 말이 채 끊어지기 전에 고함치면서 벌떡 일어섰다.“가겠습니다 ─ 가서 그년에게 물어 보고, 대답이 변변치 못하면 이년을 죽이리라…….” “하하하하, 흥분하지 말게. 흥분했다가는 일을 그릇되게 하네. 자 나한테 맹서하게. 흥분하겠……” “놓아주세요.” 그는 나를 뿌리치고 나가려 하였다. “○, 자네 바보네. 바보야!” “형님!” 그는 갑자기 내 팔에 늘어지면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형님,이런 분할 일은 내 평생 처음이외다. 이런 수치가 어디 있겠습니 까. 형님, 어이구 분해, 분해. 참 이런 분한 일이…….” “나도 알겠네. 나도 알기에 내 침식까지 잊고 자네 일을 돌보아 주지 않 나?정신 차리고 내 말대로만 해보게. 자, 흥분하지 말고 가서 부인을 만나 보게. 자, 알겠나?” “네.” 그는 목멘 조그만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럼 잠깐 다녀오게.그리고 가서 아까 말한 대로 하고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식도원(食道園)으로 오게.내 먼저 가서 기다릴께 꼭 잊지 말고 와서 경과를 다 내게 알게 해주게. 식도원 말이네.그럼 가보게.” 나는 그를 내어보낸 뒤에 곧 전화실로 가서 전화로 ○의 아내를 불러내었 다.그리고 목소리를 앓아 죽어가는 A씨처럼 하여 가지고,‘이제 ○가 가서 무슨 일을 묻더라도 모른다고만 하라’는 것과 ○는 아 무 똑똑한 증거는 못 잡았다는 말과 지금 ○○(즉 나)가 이 병원 간호부를 매수한 모양이니, 결코 병원으로 전화를 걸거나 찾아오지를 말 일과 한 일 주일 이내로 퇴원할 수 있단 말을 ○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나는 한번 씩 웃고, 휘파람을 불면서 그 집을 나섰다. ‘여봅시오. 이제 전개 될 ○○씨의 각색하고 감독하는 일장의 연극을 보 아주십시오. 희극이 될까. 비극이 될까. 활극이 될까는 미리 말하고자 아니 합니다. ○와 그의 아내와 A씨 세 명광대가 출연하는 이 연극은 마지막 막 이 열렸습니다.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아침으로는 이 일장의 큰 연극은 결말 을 맺겠습니다. 결말이 상쾌하게 맺어지거든 박수갈채를 원합니다.’
29
오후 다섯 시쯤 하여 나는 호떡을 찾아가서,오늘 밤 일곱 시에 식도원에 서 ○와 만날 약속을 하였지만,나는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인천을 잠깐 다녀와야겠으니,내 대리로 식도원에 가서 ○와 좀 있어 달라고 부탁하였 다.“내 열 시 차에는 꼭(개백정 치고) 올께,그때까지만 어떤 일이 있든 ○ 를 좀 식도원에 붙들어 두어 주게.자네도 아는 바와 같이 지금은 ○를 잠 시라도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네.일곱 시부터 열시 까지 세 시간 동안만 붙들어 둬 주게. 부탁일세.” “범사(凡事)는 개재오지흉중야(皆在吾之胸中也)라. 술값은 자네가 내야 네.” “무론.아까 식도원에 부탁했어. 칠호실이네. 기생도…….” “하하하하, 내대신(內大臣)이 무서운가?그럼, 부탁하네.” 나는 호떡과 작별하였다.
30 일곱 시쯤 하여 나는 ○의 집 근처에 있는 잡화점을 찾아가서,거기서 ○ 가 식도원으로 향하여가는 것을 본 뒤에 ○의 아내 혼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의 아내는 자기 방 교자에 한심한 듯이 걸터앉아 있었다.나는 말없이 외투를 벗어 던지고 그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그는 뜻하지 않은 때에 나그네에게 놀랐는지,잠깐 머리를 들었다가 대단 히 예쁜 웃음을 한번 씩 웃고 인사를 한다.아직껏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할 때는, 그 웃음을 눈앞에 볼 수 있도록 그 웃음은 요염한 것이었었다.나는 뜻하지 않고 눈을 한번 흘긴 뒤에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었다. 한 분, 두 분, 오 분,십 분, 나는 아무 말 없이 뚫어지도록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과 머리는 차차 낭패하여 둘 곳이 없는 듯이 좌우 로 왔다갔다 하게 되었다.그의 숨소리는 차차 높아갔다. 즉 그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돌이키면서 방긋 웃었다.그러나 그 웃음 아래 고여 있는 어지러 운 눈물을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고즈너기 입을 열었다.“A씨가 세상 떠났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뜻하지 않은 사건보다도 뜻하지 않은 나의 발언 (영구의 침묵으로 알았더니)에, 그는 놀란 듯하였다.나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외었다. “A씨가 세상 떠났습니다.” “오해시지요. 한 주일쯤 뒤에는 퇴원…….” 그는 방긋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하하하, 아까 그 전화를 믿으십니까.그 전화는 내가 건 것이에요. 놀랐 습니까?놀랄 만한 일이지요. ‘왜?’ 봉선 씨의 눈은 ‘왜 그런 전화를 걸 었느냐’고 묻습니다그려. 대답하오리다. 아니,거기 대해서는 대답할 필요 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봉선 씨와 A씨의 새의 일은 인젠 나는 전부 다 안다는 말씀뿐은 드려야겠습니다. 가만,가만 계십쇼. 내 이야기가 다 끝난 뒤에 말씀하십쇼. 봉선 씨가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이 ○○는 다 알았 에요. A씨를 동래로 오라고 한 일이며,○군이 동래와 온양온정에 가 있는 동안 봉선 씨가 밤낮을 할 것 없이 A씨의 집에 가 있던 일이며,다 나는 압 니다. 하니깐 아니, 그런데 내가 오늘 밤 ○군의 출타를 뒤를 타서 온 것은 봉선 씨의 변명을 듣자고 온 것이 아니고 ─ 무얼?” 나는 말을 뚝 그치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증오의 표정이 불붙듯 피어올라 있었다.나의 주먹은 뜻하지 않고 힘있게 쥐어졌다 ─ 그러나 나는 다시 주먹을 놓았다. “내가 밉지요?나도 또한 봉선 씨가 날 미워하느니 만큼 봉선 씨가 밉습 니다. 그러나 이봅쇼. 봉선 씨.A씨는 인젠 세상 떠났습니다. 의심나거든 자, 지금 나가서 전화로 병원에 물어라도 보십시오.탈이 완쾌될 여망이 어 제는 있었는데 ─ 그 사람의 버릇이라 좀 낫는 것 같으니까 그곳 얼굴 빤 빤한 간호부와 희롱을 하다가 그 때문에 아까 여섯 시쯤 세상 떠났습니 다.” 나는 힐긋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불붙는 시기를 본 뒤에 말을 계속하였다. “봉선 씨, 이보십쇼. 그러니깐 인제는 봉선 씨는 ○군에게까지 신용을 잃 으면, 이 너른 세계에 외로운 홀몸이 되지 않겠습니까?홀몸도 괜찮다고 속 으로 생각하실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과 현실과는 온전히 달라요.사고무친이란 말이 말로는 쉬울지 모르나, 나도 경험한 바이어니와 ─ 견 디기 힘듭니다.게다가 나 같은 사내와도 달리 젊은 여인의 홀몸이라는 것 은 그것이야말로 개밥에 도토리입니다. 시집?가령 봉선 씨가 정당한 일로 ○군에게 버리웠으면 모르겠지만,이런 향기롭지 못한 일로 버리운 뒤에 누 가 그런 여편네를 아내로 데려갑니까?자, 내 말을 명심해서 들으십시오. A 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 사실이며(하며 나는 힐긋 그를 쳐다보았다) 다시 말 하자면,하늘과 같이 믿고 땅과 같이 믿던 A씨까지 세상을 떠났으며 이제 봉선 씨가 취할 길이 두 가지 밖에는 없습니다.한 가지는 A씨의 순사(殉 死)를 하든,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돌이켜서 ○군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 든……. A씨와 봉선 씨의 새의 일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밖에는 없습 니다.그러니깐 만약 이제 봉선 씨가 마음을 돌이키겠노라고만 할 것 같으 면 손가락 한번 움직이기보다도 더 쉽게 ○군의 마음을 돌아서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대신 ─ 봉선 씨가 머리를 가로 저을 것 같으면, 나는 곧 ○ 군에게 온갖 증거를 다 제공해서 봉선 씨를 검사국에 고소하게 하겠습니다. 자,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 길을 어느 것이든 뽑으십쇼. 어느 것을 뽑으시 겠습니까?” 그는 머리를 수그린 대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다 타진 담배를 내어 던지고,다시 한 꼬치 꺼내어 붙여 물으면서 그 의 대답을 재촉하였다.그는 역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31
천만 어를 다하여 몇 번을 말한 결과, 그는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그의 눈에서는 커다란 눈물이 떨어졌다. ‘회오(悔悟)일까?분한 눈물일까?부끄러움일까?’ “봉선 씨, 알았습니다. 그러면 인제부터는 마음을 다시 먹고 ○군을 섬기 시겠단 말씀이지요?” 그는 대답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좀 뒤에 다시 말을 꺼내었다.“그러면 이제부터는 결코 사념을 품지 않고 ○군뿐을 섬길 수 있다고 맹 서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 ─ .” 나는 앞에 놓인 책상 귀사기를 만져 보았다.그리고 책상 다리를 만져 보 았다. 그 뒤에 내 바지를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유서를 쓰십시오. ” “네?” 그는 튀어나듯 벌떡 교자에서 일어섰다. “아니, 자살하시란 말씀이 아니외다. 자,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갑자기 ○군의 마음을 돌이키려니 어떻게 돌이킵니까.한 가지 길은 봉선 씨가 유 서를 쓰시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유서 ─ 당신이 너무 의심을 하니 제 마 음을 알리고자 죽습니다 ─ 고 유서를 한 장 써서 집에 둔 뒤에 어느 시골 에든지 한두 달 몸을 피해 있으면, 그동안에 내가 ○군의마음에 후회하는 생각이 나는 것을 보아 가지고 다시 봉선 씨를 서울 ○군께로 데려오지요. 그 뒤에는 소위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요,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라는 격이 아닙니까?이러니 저러니 할 것 없이 봉선 씨는 내 말만 꼭 들읍시오. 아아,○군이 봉선 씨의 품행이 단정한 줄을 알고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자, 어서 쓰십시오.○군이 돌아오기 전에 어서 ─ 나도 아우와 같이 사랑 하던 ○군이 하루 바삐 기운이 돌게 되는 것이 기달키웁니다.자 ─ .” 그는 먹먹히 앉아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편지 종이와 잉크,펜들을 그의 앞에 갖다 놓았다. “자 붓 잡으시오. 부릅니다. 사랑하는 그 지아버님께……. 왜 붓 안 잡으 십니까?” 그는 붓을 잡았다. ─ 당신이 너무 의심하시니,이 제 마음을 보이기 위하여 젊은 목숨을 끊노라고,그는 내가 부르는 대로 이쁜 필적으로 써 놓았다. “봉투에.” 나는 작은 소리로 말한 뒤에 돌아서서,○의 가운의 허리띠를 몰래 뽑아 가지고 그의 뒤에 서서 어깨 너머로 그를 보았다.그는 편지를 맵시나게 접 어서 봉투 속에 넣은 뒤에 겉봉에 ○의 이름을 썼다.그러나 봉투의 ‘氏[씨]’ 자가 끝이 나자마자,나의 손에 쥐고 있던 가운 의 허리띠는 힘있게 그의 목에 얽히었다. 한 이십 분쯤 뒤,나는 ○의 아내의 하 ─ 얗게 식은 몸을 내려다보면서,방안을 좀 정리한 뒤에 ○를 만나러 식도원으로 향하였다. 미완(未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