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전날, 엘리자베트는 오촌모와 함께 서울로 들어와서 재판소 곁 어떤 객줏집에 주인을 잡았다.서울을 들어설 때에 엘리자베트는, 한 달밖에는 떠나 있지 않았으되 그렇게 그리던 서울이 므로 기쁨의 흥분으로 몸이 죽게 피곤하여져서 부들부들 떨면서 객줏집에 들었다. ‘혜숙이나 만나지 않을까, 이환 씨나 만나지 않을까, S 혹은 부인이나 혹은 남작이나 만나 지 않을까.’ 그는 반가움과 무서움과 바람으로 머리를 푹 숙이고 곁눈질을 하면서 아주머니와 함께 거 리들을 지나갔다. 할 수 있는 대로는 좁은 길로……. 그는 하룻밤 새도록 모기와 빈대와 흥분, 걱정 들로 말미암아 잠도 잘 못 자고,이튿날 낯 이 뚱뚱 부어서 제시간에 재판소에 들어왔다.아주머니는 방청석으로 보내고 자기 혼자 원고석(原告席)에 와 앉을 때에는,엘리자베트는 자기도 어찌 되는지를 모르도록 마음이 뒤숭숭하였다.염통은 한 분(分) 동안에 여든일곱 번이나 뛰놀고 숨도 한 분 사이에 스무 번 이상을 쉬게 되었다.땀은 줄줄 기왓골에 빗물 흐르듯 흘러서 짠물이 자꾸 눈과 입으로 들어온다.서울 들어오느라고 새로 갈아입은 엘리 자베트의 빈사저고리와 바지허리는 땀으로 소낙비 맞은 것보다 더 젖게 되었다.세 분쯤 뒤에 그는 마음을 좀 진정하여 장내를 둘러보았다.방청석에는 아주머니 혼자 낯에 근심을 띠고 눈이 둥그래져 서 있었고 피고석에는 남작이 머리를 저편으로 돌리고 있었다.남작을 볼 때에 그는 갑자기 죄송스러운 생각이 났다. ‘오죽 민망할까.이런 데 오는 것이 남작에게는 오죽 민망할까?내가 잘못했지, 재판은 왜 일으켜?남작은 나를 어찌 생각할까?또 부인은……?’ 그는 이제라도 할 수만 있으면 재판을 그만두고 싶었다.짐짓 자기가 남작에게 져주고 싶 기까지 하였다. 그는 머리를 좀더 돌이켰다.거기는 남작의 대리인인 변호사가 엄연히 앉아 있었다.만장 을 무시하는 낯으로 자기 혼자만이 재판을 좌우할 능력이 있다는 낯으로 변호사는 빈 재판 석을 둘러보고 있었다.변호사를 볼 때에 엘리자베트는 남모르게, “아!” 하는 절망의 소리를 내었다. 자기의 변론이 어찌 변호사에게 미칠까,그의 머리에는 똑똑 히 이 생각이 떠올랐다. 남작에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 솟아나왔다.자기를 끝까지 지우려 고 변호사까지 세운 남작이 어찌 아니꼽지를 않을까.그는 외면한 남작을 흘겨보았다. 판사, 통변, 서기 들이 임석하고 재판은 시작되었다.규정의 순서가 몇이 지나간 뒤에 원고 의 변론할 차례가 이르렀다.규정대로 사는 곳과 이름 들을 물은 뒤에 엘리자베트는 변론 하여야 하게 되었다.엘리자베트는 벌떡 일어서서 묻는 말에는 대답하였지만 변론은 나오 지를 않았다.재판소가 빙빙 도는 것 같고 낯에서는 불덩이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용기를 내어야지.’ 생각할 때에 얼마의 용기는 회복되었다.그는 끊었닷 끊었닷 하면서 자기의 청구를 질서 없이 설명하였다. “더 할 말은 없냐?” 엘리자베트의 말이 끝난 뒤에 주석판사가 물었다. “없어요.” 엘리자베트는 말이 하기 싫은 고로 겨우 중얼거리고 앉았다. ‘겨우 넘겼다.’ 엘리자베트는 앉으면서 괴로운 숨을 내어쉬면서 생각하였다. 피고의 변론할 차례가 되었다.변호사는 일어서서 웅장한 큰 소리로, 만장을 누르는 소리 로,장내가 웅웅 울리는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원고의 말은 모두 허황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는가?있으면 보고 싶다. 잉태하였다 하니 거짓말인지도 모르거니와,설혹 잉태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남작의 자식인 증거가 어디 있 는가?자기 자식이니까 떨어뜨리려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원고는 말하지만,주인이 자기 집에 가정교사가 병원에 좀 데려다 달랄 때 데려다 줄 수가 없을까?피고가 자기 일이 나 타날까 저퍼서 원고를 내어쫓았다 원고는 말하지마는 다른 일로 내어보냈는지 어찌 아는 가?원고는 당시에는 학교에도 안 가고 가정교사의 의무도 다하지 않고 게다가 탈까지 났 으니,누구가 이런 식객을 가만 두기를 좋아할까?어떻든 원고에게는 정신이상이 있는 것 을 잊어서는 안 된다.엘리자베트는 변호사가 ‘원고의 말은 허황하다’ 할 때에 마음이 뜨끔하였다.‘남작의 자식 인지 어찌 알까’ 할 때에 가슴에서 ‘툭’ 하는 소리를 들었다.병원 이야기가 나올 때에 머리 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에는 어찌 되는지 몰랐다.청각은 가졌지만 듣지는 못하였다. 다만 둥둥 하는 사람의 말소리가 한 백 리 밖에서 나는 것같이 들렸을 뿐이고 아 무것도 의식지를 못하였다.유도에 목 끼운 때와 같이 온몸이 양상스러워지는 것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그가 바롯 의식상태로 들기 비롯한 때는 판사가 ‘더 할 말이 없느냐’고 물을 때이다.판사의 묻는 말을 똑똑히 알아듣지 못하고 또 말하기도 싫은 엘리자베트는 다만, “네.” 하고 대답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뒤에는 그의 눈앞에는 검은 물건이 왔닷갔닷 움직움직 하는 것만 보였다.무엇인지는 똑똑히 알지 못하였다. 한참 있다가 판결은 났다. 원고의 주장은 하나도 증거가 없다.그런 고로 원고의 청구는 기 각한다.이 말을 겨우 알아들은 엘리자베트는 가슴에서 두 번째 ‘툭’ 하는 소리를 들었다.그 뒤에 는 정신이 아득하여지고 말았다.몇 시간 동안을 혼미상태로 지낸 후에 겨우 정신이 좀 드는 때는 그는 이상한 방 안에 앉아 있었다.껌껌한 그 방은 사면 침척(尺) 두 자밖에는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방은 들썩들 썩 움직인다. ‘흥 재미있구나!’ 그는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한가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오랫동안 머물지를 못하였다.높이 세 치, 길이 다섯 치쯤 되는 조그만 구멍으로 자기 아주머니가 보일 때에 엘리자베트는 펄떡 정신 을 차렸다.그때야 그는 자기 있는 곳은 보교(步轎) 안이고, 벌써 아주머니의 집에 다 이르 렀고,아까 판결받은 것이 생각났다. 보교는 놓였다. 엘리자베트는 우덕덕 보교에서 뛰어내리다가 꼬꾸라졌다.발이 저린 것을 잊고 뛰어내리 던 그는 엎드러질 수밖에는 없었다. “에구머니!” 아주머니는 엘리자베트가 또다시 기절을 한 줄 알고 고함을 치며 뛰어왔다.엘리자베트는 ‘죽어라’ 하고 발이 저린 것을 참고 일어서서 뛰어 방 안에 들어와 꼬꾸라졌 다.그는 울음도 안 나오고 웃음도 안 나왔다. 다만, ‘야단났구만, 야단났구만.’ 생각만 하였다.그렇지만 어디가 야단나고 어떻게 야단났는지는 그는 몰랐다. 다만,어떤 큰 야단난 일이 어느 곳에 있기는 하였다.오촌모가 들어와 흔드는 것도 그는 모른 체하고 다만 씩씩거리며 엎디어 있었다. ‘야단, 야단.’ 그의 눈에는 여러 가지 환상이 보인다. 네모난 사람, 개, 우물거리는 모를 물건,뫼보다도 크게도 보이고 주먹만하게도 보이는 검은 어떤 물건, 아주머니,연필-―-- 이것이 모두 합 하여 그에게는 야단으로 보였다.오촌모가 펴준 자리에 누워서도 그는 이런 그림자들만 보면서 씩씩거리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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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엘리자베트는 눈을 번쩍 뜨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주머니는 방 안에 없었다.부엌에서 덜겅거리는 고로 거기 있나 보다 그는 생각하였다.전에는 그리 주의하여 보지 않았던 그 방 안의 경치에서 병인의 날카로운 눈으로 그는 새 로운 맛있는 것을 여러 가지 보았다.제일 눈에 뜨이는 것은, 담벽 사면에 붙인 당지들이다.일본 포속(布屬)들에서 꺼내어 붙인 듯한 그 당지들을 엘리자베트는 흥미의 눈으로 하나씩 하나씩 건너보았다.그 다음에 보인 것은 천장 서까래 틈에 친 거미줄들이다.엘리자베트는 그 가운데 하나를 자세히 보았다.그가 보고 있는 동안에 욍 하니 날아오던 파리가 한 마리 그 줄에 걸렸다.거미줄은 잠깐 흔들리다가 멎고 어디 있댔는지 보이지 않던 거미가 한 마리 빨리 나와서 파리를 발로 움킨다.파리는 깃을 벌리고 도망하려 애를 쓰기 시작하였다. 거미줄은 대단 히 떨렸다.그렇지만 조금 뒤에 파리는 죽었는지 거미줄의 흔들림은 멎고 거미 혼자서 발 발 파리를 두고 돌아다닌다.엘리자베트는 바르륵 떨면서 머리를 돌이켰다. ‘저 파리의 경우와…… 내 경우가, 어디가 다를까?어디가……?’ 엘리자베트가 움직할 때에 파리가 한 마리 욍 나타났다.그 파리의 날기를 기다리고 있었 던지 다른 파리들도 일제히 웅― 날았다가 도로 각각 제자리에 앉는다……. 엘리자베트는 눈을 감았다. 상쾌한 졸음이 짜르륵 엘리자베트의 온몸에 돌았다.엘리자베 트는 승천(昇天)하는 것 같은 쾌미를 누리고 있었다.이때에 오촌모가 샛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엘리자베트는 눈을 번쩍 떴다.오촌모는 들어와서 물에 젖은 손을 수건에 씻은 뒤에 엘리 자베트의 머리곁에 와 앉았다. “좀 나은 것 같으냐?” “무엇 낫지 않아요.” “어디가 아파?어젯밤 새도록 헛소릴 하더니…….” “헛소리까지 했어요?” 엘리자베트는 낯에 적적한 웃음을 띠고 묻는 대답을 하였다.“그런데 어디가 아픈지는 일정하게 아픈 데가 없어요.손목 발목이 저리저릿하는 것이 온 몸이 다 쏘아요. 꼭…… 첫몸할 때…….” “왜 그런고…… 원.” “왜 그런지요…….” 잠깐의 침묵이 생겼다. “앗!” 좀 후에 엘리자베트는 작은 소리로 날카로운 부르짖음을 내었다. 낯에는 무한 괴로움이 나 타났다. “왜 그러냐!?” 오촌모는 놀라서 물었다. “봤다는 안 되어요.” 엘리자베트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보지 않을 것이니 왜 그러냐?” “묻지두 말구요!” “묻지두 않을 것이니 왜 그래?” “그럼 안 묻는 거인가요?” “그럼 그만두자…… 그런데 미음 안 먹겠냐?” “좀 이따 먹지요.” 엘리자베트는 괴로운 낯을 하고 팔과 다리를 꼬면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가 참다 못하여 억지로 말했다.“아주머니 요강 좀 집어 주세요.” 오촌모는 근심스러운 낯으로 물끄러미 엘리자베트를 들여다보다가 말없이 요강을 집어 주 었다.엘리자베트는 요강을 타고 앉았다. 나올 듯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는 오줌은 그에게 큰 아픔을 주었다.한 십 분 동안이나 낯을 무한 찡글고 있다가 내어놓을 때는 그 요강은 피오줌으로 가득 찼다. “피가 났구나!” 오촌모는 놀란 소리로 물었다. “……네.” “떨어지려는 것이로구나.” “그런가 봐요.” 말은 끊어졌다.엘리자베트의 마음은 무한 설렁거렸다. 그 가운데는 저픔과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깨를 어떻게 먹으면 올라붙기는 한다더라만…….” 잠깐 후에 아주머니가 말을 시작했다. “그건 올라붙어 무엇 해요.” 엘리자베트는 낯을 찡글고 대답하였다. “그래도 낙태로 죽는 사람두 있너니라…….” 엘리자베트는 대답을 하려다가 말이 하기 싫은 고로 그만두었다. 말은 또 끊어졌다.엘리자베트는 ‘죽어두 좋아요’라고 대답하려 하였다. ‘죽으면 뭘 ㅤㅎㅏㅆ나.’ 그는 병적으로 날카롭게 된 머리로 생각하여 보았다. ‘내게 이제 무엇이 있을까?행복이 있을까?없다. 즐거움은?그것도 없다. 반가움은?물론 없지. 그럼 무엇이 있을까?먹고 깨고 자는 것뿐-―-- 그 뒤에는?죽음!그 밖에 무엇이 있 을까?아무것도 없다. 그것뿐으로도 살 가치가 있을까?살 가치가 있을까?아, 아!어떨까?없다!그러면?나 같은 것은 죽는 편이 나을까?물론. 그럼 자살?아!’ ‘자살?(그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모르겠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 보자. 죽는 것도 무 섭지 않고,사는 것도 싫지도 않고-―-- ’ 이때에 오촌모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가서 물어 보고 올라.” “그만두세요.” 그는 우덕덕 놀라면서 무의식히 날카롭게 말하였다. “그래두 내 잠깐 다녀오지.” 아주머니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아주머니가 나간 뒤에 그는 또 생각하여 보았다.내 근 이십 년 생애는 어떠하였는가?앞일은 그만두고 지난 일로…… 근 이십 년 동안이나 살면서, 남에게,사회에게 이익한 일을 하나라도 하였는가?벗들에게 교과를 가르친 일-―--이것뿐!이것을 가히 사회에 이익한 일이라 부를 수가 있을까?(그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응!하나 있다!‘표본!’ (그는 괴로운 웃음을 씩― 웃었다.) 이후 사람을 경계할 만한 내 사 적!곧 ‘표본!’ 표본생활 이십 년…… 아……!그러니 이것도 내가 표본이 되려서 되었나?되기 싫어서도 되었지. 헛데로 돌아간 이십 년, 쓸데없는 이십 년, ‘나’를 모르고 산 이십 년,남에게 깔리어 산 이십 년. 그 동안에 번 것 은?표본!그 동안에 한 일은?표본!그는 피곤하여진 고로 눈을 감았다. 더움과 추움이 그를 쏘았다.그는 추워서 사지를 보들 보들 떨면서도 이마와 모든 틈에는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아래는 수만 근 되는 추를 단 것같이 대단히 무거웠다.괴로움과 한참 싸우다가 오촌모의 돌아옴이 너무 더딘 고로 그는 그만 잠이 들었다.자는 동안에 여러 가지 그림자가 그의 앞에서 움직였다.네모난 사람이 어떤 모를 물건을 가지고 온다. 그 뒤에는 개가 따라온다.방성 뒷산에서 뫼보다도 큰 어떤 검은 물건이 수없 이 많이 흐늘흐늘 날아오다가,엘리자베트의 있는 방 앞에 와서는 주먹만하게 되면서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어온다.하나씩 하나씩 다 들어온 다음에는 도로 하나씩 하나씩 흐늘흐늘 날아 나가서 차차 커지며 뫼만하게 되어 도로산 가운데서 쓰러져 없어진다.다 나갔다는 도로 들어오고 다 들어왔다는 도로 나가고, 자꾸자꾸 순환되었다.엘리자베트는 앓는 소리 를 연발로 내며 이 그림자들을 보고 있었다.이렇게 무서운 그림자를 한참 보고 있을 때에, “얘 미음 먹어라.” 하는 오촌모의 소리가 나는 고로 눈을 번쩍 떴다.그는 미음 그릇을 들고 들어오는 아주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하였다.‘저런 큰 그릇을 원 어 찌 들고 다니노?키도 댓자밖에는 못 되는 노파가…….’ 오촌모가 미음 그릇을 놓은 다음에 엘리자베트는 그것을 먹으려고 엎디었다. 아픔이 온몸 에 쭉 돌았다……. “숟갈이 커서 어찌 먹어요?” 그는 놋숟갈을 보고 오촌모에게 물었다. 그는,‘숟갈이 커서 들지를 못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어제두 먹던 것이 커?” 엘리자베트는 안심하고 숟갈을 들었다. 그것은 뜻밖에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았다.그는 곁에 놓인 흰 가루를 미음에 치고 먹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짜다.” 그는 한 술 먹은 뒤에 소리를 내었다. “짜기는 왜 짜?사탕가루를 많이 치구…….” 병으로 날카롭게 된 그의 신경은 그의 자유로 되었다.마치 최면술에 피술자(被術者)가 시 술자(施術者)의 명령을 절대로 복종하여,단 것도 시술자가 쓰다 할 때에는 쓰다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의 신경도 절대로 그의 명령을 좇았다.휜 가루를 소금이라 생각할 때에는 짜 게 보였으나 사탕가루라 생각할 때에는 꿀송이보다도 더 달았다.그렇지만 그의 신경도 한 가지는 복종치를 않았다.아픔이 좀 나았으면 하는 데는 조금도 순종치를 않았다. 미음을 먹는 동안에 오촌모가 투덜거렸다.“스무 집이나 되는 동리 가운데서 그것 아는 것이 하나두 없단 말인가 원…….” “무엇이요?” 엘리자베트는 미음을 삼키고 물었다. “그 올라붙는 방문 말이루다. 원 깨를 어짠대든지…….” 엘리자베트는 성이 나서 대답을 안 하였다. 미음을 다 마신 다음에 돌아누우려다가 그는, “읽!” 소리를 내고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어디가 아픈지 똑똑히 모를 아픔이 온몸을 쿡 쏘았 다. 정신까지 어지러웠다. “어찌?더하냐?” “물이 쏟아져요.” 엘리자베트는 똑똑한 말로 대답하였다. “어째?” “바람이 부는지요?” “얘 정신채레라.” 엘리자베트는 후덕덕 정신을 차리면서, “내가 원 정신이 없어졌는가?” 하고 간신히 천장을 향하고 누웠다. 천장에는 소가 두 마리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엘리자 베트는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리 시작하였다. 두 마리의 소는 싸움을 시작했다. ‘떨어지면……?’ 생각할 때에 한 마리는 그의 배 위에 떨어졌다. 일순간 뜨끔한 아픔 뒤에 는 아뭏지도 않았다.‘앍’ 소리를 내고 그는 다시 천장을 보았다. 소는 역시 두 마리지만 이번은 춤을 추고 있다. “표본생활 이십 년!” 그는 중얼거리고 담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거기서는 남작과 이환과 도야지와 파리가 장 거리 경주를 하고 있었다. ‘흥!재미있다. 누구가 이길 터인고?’ 그는 생각하였다. 조금 있다가 그는 생각난 듯이 수군거렸다. “표본생활 이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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