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선선한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거의 새벽 가까운 밤중이었습니다.밖으로 나오자마자 상호는 기호에게, “나는 여기 서서 요릿집 속을 살피고 있을 터이니,그 동안에 당신은 여 관으로 가서 여관 밑층 주인의 방 앞에 매달린 그 새장을 떼어 가지고 속히 오시오.요릿집 문을 닫기 전에 속히 오셔야겠으니, 가다가 인력거라도 잡 아타고 속히 갔다 오시오.” 하였습니다. 기호 역시 상호의 계책을 얼마쯤은 짐작하는 터이고,더구나 지금은 어물어물 시간을 지체할 때가 아니라,두말없이 뛰어가서 인력거꾼 을 깨워 일으켜 가지고 여관으로 달려갔습니다.기호를 보내놓고 상호는 그 요릿집 앞 어두운 벽 밑을 오락가락하면서 유 리창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털보 주인이 두어 번 안으로 들어 갔다가는 즉시 다시 나오고 술 먹던 손님 중에는 한 패 세 사람이 나갔으나,그 대신 또 새로운 패 세 사람 한패,다섯 사람 한 패가 모두들 얼근히 취해 가지고 전후하여 새로 들어와 각각 자리를 잡아 가지고 앉아서 술을 먹는데,세 사 람 패의 상에서는 유성기를 갖다 놓고 요란한 중국 소리를 틀고 있었습니 다.대체 중국의 이 따위 간편 요릿집이란, 밤이 새도록 내처 문을 안 닫고 장사를 하는 모양이요,손님들도 날이 새거나 해가 돋거나 마음 놓고 느긋 이 먹는 것이 보통인 모양이었습니다.그러는 중에 어쩐 일인지 요릿집 저쪽으로부터 단장 마누라가 나오더니 거 기서 술 먹고 앉았던 키다리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저편 어두운 길 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인력거가 뚜루루루 요릿집 앞에까지 와서 우뚝 섰습니다. 깜짝 놀 라 돌아다보니까, 그는 기호였습니다. 돈을 달라는 대로 주어 인력거는 돌 려보내고 기호는 상호에게 새장을 쥐어 주면서, “주인 녀석은 잠이 든 모양이더구먼. 하인 년이 자지 않고 있어서 물래 뛰어 오느라고 혼이 났었소.” 하였습니다. “그랬겠지요. 자, 이제 또 들어갑시다.” 하고, 상호는 기호를 앞세우고 새장을 든 채 또 요릿집으로 비틀거리면서 들어갔습니다. “께흡!암만해도 술이 덜 취해서 그냥 갈 수가 있습니까?또 먹으러 왔지 께흡!” 한편 상 아래에 쓰러지는 듯이 자리잡고 앉아서 술과 두어 접시의 요리를 청하여 먹으면서 상호는 자주 기호의 귀에다 대고 소근소근 비밀한 이야기 를 한참이나 하였습니다. 시간이 늦어 갈수록 술기운이 온 방안에 넘쳐지는 것 같아서 손님들의 콧 노래도 점점 높아지고, 유성기 소리도 점점 요란한 무도곡 같은 것이 돌아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술 먹다 일어서서 비틀비틀 하면서 유성기 에 맞춰 무도를 한다고 떠드는 주정꾼도 생겼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상호는 넌지시 새장 문을 열어서 그 속에 있던 새를 한 마 리 내놓았습니다. 노랗고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몹시도 시원하다는 듯이 요 리점 천장으로 후루룩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상호와 기호는 실수하여 놓친 것처럼 꾸미느라고 벌떡벌떡 일어서서, “에그머니, 에그머니.” “잡아라!잡아라!” 떠들면서 이리저리 새를 쫓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술 먹는 패들은 ‘야,이것 심심치 않은 구경이 생겼다’ 고 곧 손뼉들을 치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 새가 자기네의 앉은 머리 위로 날다가 전기 등을 건드려 놓아서 전등이 흔들거리고,전등 위에 오래 오래 앉았던 숱한 먼지가 재 쏟아지듯 이 요리 접시와 술잔 위에 쏟아졌습니다.그러니까 그 밑에 웃고 앉았던 패들도 골이 나서 모두 일어서서 새를 잡으 려고 쫓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이번에는 새가 여러 사람에게 쫓겨 다니 느라고 미쳐 날뛰느라고 이리저리 나르면서 똥을 찍찍 깔겼습니다.그러니까 보이와 털보까지 쫓아와서 새를 잡으려고 총채를 들고,혹은 비 를 들고 쫓아다니기 시작하여 온통 수라장이 되었습니다.유리창이나 문을 열어 놓았으면 그리로 새가 날아 나가고 아무 일도 없으련마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이 이리로 우르르 저리로 우르르 몰려다니느라고‘쿵 쾅쾅 쿵쾅쾅!’안에서 듣기에 바깥 요릿청에 난리가 난 것 같으므로 이상하 게 생각하고 안에 있던 놈도 눈이 휘둥그레하여 쫓아 나왔습니다.그 틈에이렇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호는 안문을 열고 후닥닥 뛰어 들어갔습니 다.그러나 모든 사람이 새를 쫓아다니느라고 아무도 그것을 안 사람은 없었습 니다.한참이나 새를 잡느라고 소동하는 중에 몸이 날씬한 손님 하나가 모 자를 벗어 들고 후려갈겨서 구석으로 몰아가지고 모자로 사뭇 눌러서 시원 스럽게 잡았습니다. 쫓아다니던 모든 사람이 시원해 하면서 ‘휘’ 하고 숨을 돌려 쉬었습니 다. “야, 요놈이 그렇게 여러 사람을 미치게 하였담!” 하면서, 잡은 새를 들여다보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얄미워하기도 하다가 잃 어버린 임자에게 주려고 임자를 찾았으나,이상한 일인지 그들이 앉았던 상 에는 새장과 음식 접시가 놓였을 뿐이고,두 사람이 모두 그림자도 없었습 니다. 기호는 상호가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조금 후에 밖으로 사라져 나갔으니,상호가 이 집안에서 순자를 구하면 삼층 밑 그 지하실로 도망하 여 저편 동네 창고집으로 빠져나올 약속이므로,자기는 바깥 한길로 돌아 그 창고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 계책이었습니다.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는 요릿집 놈들과 손님들은‘웬일일까, 웬일일까?’ 하고 이상해 하면서 새장을 가운데다 놓고 궁금한 짐작으로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31. 땅속의 비밀 길로
교묘한 계책으로 바깥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그 틈을 타서 대담하게 마굴 속에 뛰어 들어간 상호는 들어서기는 하였으나,갑자기 가슴이 울렁거 리고 다리가 떨리는 것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이 안에 아직도 몇 놈이나 있는지 모르겠고,바깥에서 또 어느 때 우르르 쫓아 들어 올지도 모르는 노 릇이 되어서 더욱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그러나 기왕 들어선 걸음이라 잡히면 잡히는 그때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 다고,상호는 층계 아래로 허둥허둥 내려가면서 이 방 저 방 미친 사람같이 후딱후딱 들여다보면서 급한 소리로, “순자야, 순자야!” 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마음은 조 비비듯 하면서 급급히 부르건마는 아무 데서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습니다.상호는 점점 마음이 조 비비듯 하였습니다. 삼층 밑바닥에까지 내려가면 서, “순자야, 순자야!” 불렀습니다. 삼층 밑 방 그 옆방으로 가면,저편 동네 창고 집으로 도망해 가는 땅 속 길이 있는 방인데, 거기서 한 번 더, “순자야, 순자야!” 하고 불렀습니다. “앗!” 그때에 상호의 귀에 들린 것!그것이 분명히, “예, 예.” 하는 소리였습니다.순자 역시 아까 뜻밖에 주정꾼이 손에 쥐어 주는 종이를 받아 두었다가 방 에 들어와서 펴 보니,반가운 오빠의 소식이라 오빠가 자기를 구하러 중국 까지 쫓아와 준 것이 고맙기도 하였거니와,오늘밤에 기호와 함께 구원하러 오겠다는 소리에 이때껏 잠을 안 자고 바깥 동정에 귀를 밝히고 있었던 것 입니다.어떻게도 반가운지 앞뒤 무서운 것 다 잊어버리고, 상호는 와락 그 방문으로 달려들었으나,큰일이 났습니다. 방문은 꼭 잠겨 있습니다. “방문이 잠겼다, 방문이 잠겼다!” 하고, 상호는 울상이 되어서 소리쳤습니다. 어디선지 사람 오는 발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하고,가슴에서는 불덩이들이 춤을 추는 것 같은데,원수의 문이 꼭 잠겨 있어서 까딱을 아니 하니 어찌합니까?상호는 하도 급하여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디서 누가 쫓아오지나 않는가 귀를 밝히는데,바로 그때 안으로부터 방문이 덜컥 열리었습니다. 그리고 그리로 순자가, “오빠!” 하고, 뛰어나왔습니다. 들여다보니 그 방 속에서 털보 주인의 중국 마누라 가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순자를 지키고 있었는데,밤이 깊으니까 세상을 모르고 깊이 잠이 들어 있었으므로,순자가 그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열고 나온 것이었습니다.상호와 순자는 인사고 무어고 여부가 없었습니다. 상호는 순자의 손을 잡 고, “자, 어서 어서!” 하고, 잡아당기면서 그 방의 저 편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거기는 땅 속 길에 구멍이 뚫려 있으므로 상호는, “아무 염려 말고 내 뒤만 따라 오너라.” 하고,자기가 앞에서 휘장을 헤치고 좁다란 구멍으로 머리와 허리를 굽히 고, 기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순자도 오빠를 따라가는 기쁨에 무서운 것도 괴로운 것도 다 모르고,오빠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기어갔습니다. 퍽 어두운 캄캄한 구멍 길을 기어가면서,상호의 가슴은 몹시도 두근 거렸 습니다. ‘지금쯤 일이 발각되어 뒤에서 쫓아오지나 않을까……. 혹시 기호더러 저 쪽 창고 집 문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는 하였으나,그 안에 창고집 속에 그놈의 패들이 모여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면 어쩌나…….’ 겁은 자꾸 뒤를 이어 생겨서 가슴에 두방망이질은 그칠 줄을 모르는데 큰 일 났습니다.이 좁다란 땅속 길로 자기 남매가 기어 나가는 저편 안쪽에서 누구지 이리로 향하고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멈칫 나가던 것을 중지하고 몸을 웅크린 상호는,어두운 속에서도 머리가 아찔하고 온몸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같이 저리었습니다. 공교롭기도 하지 요,이 땅 속 길에서 머리를 맞부딪히게 되니, 이 노릇을 어찌 하겠습니까?─《어린이》5권 7호 (1927년 9∙10월 합호).
32. 단장!단장!
그렇지 않아도 뒤쪽에서 놈들이 쫓아올 것이 분명하고,앞에는 그 창고에 칠칠단 놈들이 모여 있어서 야단이 날 듯하여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삼층 밑 땅 속에 뚫린 좁다란 굴속으로 도망하는 터라,달리 도망할 길이 없어서 그냥 순자를 데리고 기어 나가다가 뜻밖에 저쪽으로부터 오는 놈의 머리와 머리가 맞닥뜨리어 온몸이 오싹하였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틀렸다!’ 하고, 상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그러나 이렇게 급하게 된 때에도 제일 마음이 크기는 오직 순자뿐이었습니다.상호는 움찔하면서 몸을 뒤로 웅크리고 뒤로 손을 내밀어 더듬어서 순자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그 손은 몸과 함께 부들부들 떨리었습니다. 그때 별안간 얼굴 앞에 환하게 불이 켜졌습니다.저쪽 놈이 불을 켠 것이 었습니다.이제는 꼭 죽었구나 생각하면서 얼굴을 들어 불빛에 저편을 보았 습니다. “앗!” 정말 큰일 났습니다. 거기 불을 들고,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 도 아닌 악마 같은 단장의 얼굴이었습니다. “앗!” 상호의 입에서는 저절로 부르짖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정신도 잃 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요놈아!어서 이리 나오너라.” 귀신같이 호령하면서,한 손으로는 상호의 등덜미를 잡고 오던 쪽으로 도 로 나갔습니다.뒤에 따라오던 순자는 혼자 돌아서서 도망할 수도 없고,어 리둥절한 마음에도 이제는 죽더라도 오빠하고 같이 죽겠다고 끌려가는 오빠 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따라 끌려 나갔습니다.“요놈의 자식아, 어떻게 생겨서 그렇게 앙큼하냐?조선에서 네가 도망을 하였으면 하였지,계집애까지 빼어 가려고 여기까지 수염을 붙이고 쫓아와 서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해?” 하고, 칭칭 묶어 놓은 상호를 구둣발로 걷어차고는,달려들어 코 밑에 만들 어 붙인 수염을 잡아 뜯었습니다. “요 앙큼한 놈의 자식!어디 견디어 봐라!” 하고, 다시 발길로 걷어차서 단번에 쓰러뜨렸습니다.굵은 줄에 묶인 채로 순자 옆에 쓰러 진 상호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구 두에 채여 입술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순자는 소리쳐 울었습니 다.“저놈 배 위에 7호 돌을 얹어 놔라!” 명령이 떨어지자 부하 두 놈은 큰 궤짝만한 돌덩이를 둘이서 억지로 들어 다가 묶이어 신음하는 상호의 가슴과 배 위에 걸쳐 눌러 놓았습니다.“내일 오정 때까지만 눌러 두어라. 그러면 저절로 죽을 것이다.” 순자는 몸을 묶인 채 그냥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잠시 후 단장은 부하 에게 명령하여 순자를 층계 밑 구석방에 데려다가 가두어 놓게 한 후,곡마 단에서 말을 갈기는 길다린 채찍으로 후려갈기기 시작하였습니다.
33. 그리운 고국으로

